왜 나는 겨울이 깊어지면 눈이 내리는 숲에서 왜 청전이나 조선의 풍속화보다
브뤼헐의 이 그림이 떠오르는 걸까.
16세기 르네상스기의 플랑드르의 민속화가 브뤼헐이 나와, 아니 우리 산야의 풍경과 무슨 관계라고.
어디서쯤 겨울의 풍경을 묘사할때 브뤼헐을 이야기 한적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앞으로 무슨 소설을 쓸때 거기 또 등장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브뤼헐의 그림속에 나오는 겨울처럼"~ 이란 말은 내 고유의 습관화된 말이다.
브뤼헐의 이름이 낯선 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그의 그림 몇점은 보았을 것이다.
농노들의 결혼잔치, 질펀한 피로연이 벌어진 가운데 엎어지고 자빠지는 탁자위에 낭자한 잔치음식들,
한쪽에서 배고픔에 눈치를 보는 악사들. 음식을 나르는 일꾼들. 그리고 좀 "맹해"보이는 신부.
소박한 농촌의 결혼잔치와, 정작 그 그림의 주인공을 찾기가 난감한 "이카루스의 죽음". 그리고 바벨탑.
화면의 중앙부부터 구석까지 꼼꼼하게 그려나간 소박한 그림들 속에서 그 시대의 낮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억압에 지친 조국을 뜨거운 마음으로 위로했던 이 풍속화가.
이 모든 사전 정보와 상관없이 내겐 이 그림은 고향풍경의 한 모습이다.
겨울이 깊으면 동네 또래들과 무리를 지어 토끼몰이를 하던 오빠들,
돌아오는 겨울 저녁, 우물가에 그림자를 길게 늘이던 미루나무 가지. 낮게 날아가던 까치들.
빈 논에는 잘라진 벼 포기 주위로 얇은 얼음이 얼고 신이 푹푹 빠지는 논 한가운데 수렁을 건너 집에 오다 보면 바짓자락은 온통 흙 범벅이고. 군불을 때는 아버지 옆에서 바지를 말리며 혼나던 기억.
지지배가 때되면 일찌감치 기어 들어올 것이지 해가 다 저물도록 싸돌아 다녀!
왕겨가 타는 불빛에 잠깐씩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환해지고, 부엌 한구석에선 거묵이가 귀를 쫑긋 세우며 달아오른 내 얼굴을 바라보고.....
그때 열린 부엌문 너머로 싸락눈이 한정없이 내리고.
마당에, 장독대에, 담장에....
반쯤 뜬 눈으로 눈을 바라보면....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아버지... 거묵이....
매운 바람이 부엌문을 두드릴때마다 뒤척이던 거묵이...
풍구를 돌리다 풀썩 일어나는 먼지에 기침을 하던 아버지.....
아마도 사냥꾼들이 집으로 돌아갔을때의 모습은 충청도 시골 어느때의 우리 마을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세밀한 북유럽의 한겨울 풍경속에서 지나간 언젠가의 어린 시절 겨울저녁을 불러온다.
까마득한 시차를 두고, 그것도 동양과 서양의 어느 겨울.
브뤼헐과 나는 이렇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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