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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이야기3

2. 친구 가진 것도, 자랑할 것도 별로 없던 유년의 내게 아마도 남보다 조금 더 주어진 것이라면 역시 책이었을 것이다. 우리 마을엔 내 또래도 없었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라고는 책뿐이었다. 그 시절,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는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 그리 많을 리가 없지만 문자로 된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그 맹렬한 욕망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처럼 내 목을 졸랐다. 글자를 깨치고 교과서를 맨 먼저 읽어버렸고 (얼마나 읽고 또 읽었던지 아직도 초등학교 몇 학년까지의 국어책은 문장 그대로가 떠오른다, ‘햇볕 따뜻한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노랑병아리 한 마리가 농장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식의.), 그 다음에는 다섯 살 위의 오빠 교과서를 읽었고, 그 다음에는 집안에 굴러다니는 ‘농민신문’과 월간.. 2020. 10. 7.
1. 마드리드에서의 에스프레소 한 잔. 사람마다 좋아하는 커피의 취향은 사람들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하고 그 사람의 삶의 순간에서 빛나는 한 순간을 만들어준 커피 한 잔에 얽힌 기억들, 추억들은 또 그 사람을 이루었던 행복의 시간들이나 많겠지. 커피의 다양한 원산지와 그 품질들도 참 천차만별이더라만 나는 그런 섬세한 맛을 논할 주제는 못된다. 우리집 찻장에 얌전히 노는 찻잔들을 생각하면 내가 맛보다 그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인 것도 같고. 남자도 끊고 술도 끊고 내가 뭔 낙으로 이 세상을 건너가랴 (--;;) 하며 주구장창 위에 부어댄 게 커피인데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그 한잔을 생각하자니 2017년 스페인 여행이 생각난다. 마드리드였다. 밤비행기를 타고 스키폴공항을 거쳐 도착한 그날의 목적지는 마드리드 왕궁(Madrid Palacio R.. 2020. 10. 6.
여행 못 가는 한풀이를 어제 퇴원 후 첫 외래진료에서 선생님이 이제 휠체어도, 목발도 놓고 직접 걸어보기를 숙제로 주었다. 목발은커녕, 휠체어를 놓는 것도 무서웠는데 눈 딱 감고 바로 시작하니 처음엔 바로 서는 것도 후들거렸다. 넘어져도 다시, 또 다시 해보리라 다짐하니 되긴 된다. 한 발, 두 발 - 그러다 침실을 벗어나 욕실로, 그러다 거실을 활보해보고 - 오늘은 길 건너 친구를 불러 집 앞 까페에서 차를 마셨다. 안식년을 맞아 쉬고 있는 친구인데 코로나 시국에 서로 몸 사리느라 자주 만나지도 못했는데 내 수술 입원까지 겹쳐서 서로 sns로만 생존신고했던 친구다. 향 좋은 커피를 나누며 서로의 근황을 묻다 문득, 이렇게 시간만 죽일 게 아니라 무슨 주제든 하나를 잡아서 날마다 안부인사 삼아 짧은 글을 지어볼까 싶어졌다. 소.. 2020.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