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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의심하는 도마 - 카라밧지오

by 소금눈물 2011. 11. 3.

 

 

 

 

18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평가절하되고 존중받지 못한 위대한 화가의 이름 중에 카라밧지오가 있다.
그와 경쟁관계이던 바글리오네의 혹평( 바글리오네는 요절한 카라밧지오보다 오래오래 살아서 그의 저서에 욕쟁이, 싸움꾼, 살인자의 질 떨어지는 삼류 그림이라고 있는대로 욕을 퍼붓고 마침내는 그의 그림속의 악마에게 카라밧지오의 얼굴을 줌으로써 후세까지 영원히 그를 짓밟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을 따라 후세 미술사가나 화가들조차 그를 형편없는 모사화가나 술주정뱅이식으로 깔아뭉갰다.

그 당시의 화가들은 모델이나 자연을 화가가 본 눈으로 그리는 훈련을 하지 않았다.
예술에는 어떤 완벽한 이데아의 구현을 위해서 존재하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것을 찾기 위해 과거의 명작들을 모사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재현해내는 일에 몰두했다. 그것이 아름다움이었고 예술이었다.

카라밧지오의 그림들은 지금의 관람자가 보기에는 전혀 걸릴 데가 없이 아름답고 사실적이다.
하지만 그 때의 관람자들과 비평가들은 경악을 했다.
아름답지 못한 박쿠스, 아니 병들고 찌든 신의 얼굴이라니~!
성스럽지 못한 마리아는 또 뭐야? 저건 바로 아랫집 처녀의 고단한 얼굴이 아닌가?
예수라고? 사도라고? 시장바닥에서 생선을 파는 김씨 이씨가 아닌가?
이자가 제정신인가? 어쩌자고 성인들의 이름을 머리 벗겨진 푸줏간 주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인가?

예수는 갈릴리 지방의 고단한 청년이었다. 아마도 그의 평생에 배부르게 먹어 본 일도 없을 것이고 비단천을 둘러 본 일도 없을 것이다.
그의 제자들 역시 그렇다. 세리였던 마태나 잘난 바리새인 바울 말고는 아마도 이렇게 평생을 낡은 한 벌의 옷으로 입고 자고 했을 것이고 그들의 거친 발에는 흙이 묻지 않는 날이 없었을 것이다.
성스럽지 않다고?
예수와 그 제자들의 일상이 성스러웠던가? 그들은 고단한 길 위의 사람들이었고 낡은 한벌의 옷과 지팡이에 의지해 가는 이들이었다.
고급한 철학을 미리 접했을 계층의 사람도 아니었고 훈련받은 지식인들도 아니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한 것은 예수의 이적과 실체적인 증명이 될수 없는 믿음이 전부였다.

아, 보이지 않는 믿음이란 얼마나 막연하고 약한 것이던가.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차마는 말하지 못 했을 그 증거를 요구한다.
당신이 예수냐, 사흘 만에 살아난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 모르겠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믿고 믿은 것을 통해서 움직이겠다.

도마에게 불순종의 짐을 다 부려놓았지만 다른 제자들 역시 호기심과 불안에 찬 눈길로 예수의 상처를 들여다 본다.
깊이 찔러보는 도마의 표정을 보라!
휘둥그레진 눈과 깊은 주름, 오랜 길 위에서의 생활로 낡은 옷은 터지고 얼굴은 늙었어도 그는 신의 아들에게도 당당하게 그의 믿음의 전제를 요구한다. 
예수여. 신의 아들이여. 내게 실존하여라. 그러면 내가 존재하고 내 존재를 통해 그대를 증명하고 증거하리라.
오 당당하다 도마!

예수의 모습 역시 그렇다.
세상 짐을 지러 온 순결하고 극적인 모습의 성인도 아니다.
그토록 아꼈던 제자들에게 그가 그였음을 증거해만 하는 예수. 지치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가 세상의 권력을 가진 이였던가. 그가 빛나던 권좌에 있던 이였던가.
그는 자기 몸을 써 걸었고 상처 입었고 인간의 몸을 가진 채로 고통속 에 죽어갔던 신이었다.
그는 후광이 없었고 비단옷을 입지 않았고 천사들을 자기 증명으로 데리고 다니지도 않았다.
그도 길 위의 사람이었다.

비단옷을 입히고 천사들에 둘러 싸여 하늘의 옥좌에 근엄하게 앉힌 이만을 예수로 삼고 경배하던 이들에게 얼마나 황망한 일이었고 참람한 일이었으랴.

하지만 예수의 길과 그 삶의 궁극의 목표와는 너무나 달라진 본디의 모습에서, 카라밧지오는 지치고 초라한 예수와 시장의 지겟꾼 같은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더우기나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이 아닌 도마를 통해서 진정한 예수와 사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예수의 상처에 손가락을 찔러 보지도 않고 비단옷을 입고 경배만을 받는 예수를 보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권좌에 앉아 온화하게 사랑의 미소를 보이는 그이. 내가 섬기는 얼굴이 그토록 아름답고 존귀해야 섬기는 내가 자랑스럽고 , 결국은 내가 보는 그가 아니라 그런 그를 "사모하는" 내가 존귀해지도록 말이다.

도마..
그대는, 예수의 상처에 용감하게 손가락을 넣어보고 믿은 그 믿음으로 내 얼굴을 돌리게 한다.

예수여, 실존한 예수여.
상처를 가지고 그 상처에 손을 넣어보라 말하는 예수여.
비단옷의 영광이 아니기에 당신은 바로 예수입니다.
의심하는 인간을 사랑하고 그 의심을 통해서 증거당한 당신이기에 바로 우리가 바라보는 그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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