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을 생각하고 이상의 날개를 다시 읽었다.
아 참으로 오랜만이다.
명작은 일생에 세 번은 고쳐읽어야 하는 법이라고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쉬울 것 같은 말이 참 힘들다.
물론 횟수로 치자면 날개를 세 번만 읽었겠는가.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처음 접하는 유년이나 소년시절, 그 이후 청년시절, 중년에 접어들어 다시 돌아보며 읽다보면
처음 접할때의 감상과 두번 세번 접하면서 다가오는 감동이 그 무게와 색깔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 말씀을 담으면서 무슨 책이든 이 책을 나중에 언제 다시 펴 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도 사실 어렸을 때 그 감동으로 밤을 새게 만들었던 수 많은 명작들을 다시 새겨볼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말씀이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겠다.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면이다.
매음의 아내는 주인공을 재우면서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아내가 주는 약을 머고 내내 주인공은 길고 긴 잠을 잔다.
우연히 아내의 화장대 아래서 발견한 수면제 아달린 갑.
아침에 먹은 네 개의 자리가 꼭 빈 약갑을 들고 주인공은 집을 나와 헤메다 남은 여섯 알을 몽땅 삼킨다.
"맛이 익살맞다"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이 씁쓸하고 독한 외로움, 무어라 딱히 잡히지 않는 이 지독한 허전함이 가슴을 무겁게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언제였던가.
윤석화의 연극 푸시케 그대의 거울을 보았다.
거기에서 수면제가 나온다.
페노바르비탈, 아티반, 바리움.....
연극을 보면서 내내 날개를 생각했다.
-왜 이렇게 별 상관도 없는 긴 사설을 늘어놓을까..
이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그 날개의 작가 이상이다.
화가 구본웅은 두 살때 마루에서 떨어져 척추장애인이 되었다.
이상보다 여섯 살 연상이었는데 구본웅의 서모의 누이와 이상이 결혼하여 일본으로 가기까지
이 화단의 귀재 구본웅과 역시 문단의 만만찮은 인물이었던 이상은 제비다방을 둥지삼아 어울렸다.
이상의 실제 얼굴과 이 그림의 얼굴이 별로 닮지 않은고로 그림의 주인공을 두고 말이 많았다 한다.
그런데 이상의 실제 얼굴을 볼 수 없는 훗사람이 보기에도 이 인물은 이상을 기가 막히게 잡은 것 같다.
어둡고 탁한 배경을 두고 세상과 화해를 생각조차 할수 없다는 듯한 삐닥한 시선으로 파이프를 물고 있는 마른 청년.
현실과 이상이 어울릴 수 없었던 키 작은 화가의 붓질과 이 선병질적 천재작가의 젊은 얼굴이 고스란히 그림 속에 떠오른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수난을 당하는 남자를 무시하고 덥석 흐트러진 옷차림의 아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낯선 남자
남자가 잠든 새 났던 이웃의 불, 성냥갑과 동전, 횟배앓는 뱃속...
잊혀지지 않는 선연한 이미지는 이상과 날개와 또 구본웅의 붓질로 남았다.
날개가 돋지 않은게 아니라 부러뜨려진 작가 이상
그리고 화단의 이상 구본웅..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날개 첫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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