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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 일리야 레핀

by 소금눈물 201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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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섬찟하다.
혁명은 끝났다.
아무도 기억하고 기다리지 않았다.
문을 열어주며 묘한 표정으로 응시하는 젊은 여인은 아마도 아내이리라
단란한 탁자에서 책을 펴고 있다가 두려움에 움츠러든 꼬마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 못하는 막내일 것 같고 피아노 앞의 소녀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전설적인 아버지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아들만이 반가움보다는 그 경이로운 인물을 직접 보는 표정으로 놀라고 있다.
굽은 허리로 일어서 먼저 맞는 것은 역시 모정이다.
한시도 잊을 수 없었을 그 아들, 혁명이나 민족보다는 먼저 어머니의 가슴에 남은 한. 아들...아들...
억압과 폭력의 수형을 이기고 돌아온 아버지, 낡은 외투에 비쩍마른 이 사내의 형형한 눈빛에 비해
가족들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다.
그렇다.
그들은 반가움보다는 불안과 혼란이 더 크다.
이미 아무도 기억치 않는 이 지나간 이념의 전사가 그들의 평안해진 일상을 어떻게 흔들어놓을지가 불안하다.

지나간 혁명은 아무도 기억치 않는다.
혁명가는 외톨이가 되고 무시하지 못하나 외면받는 존재가 된다. 비극이다....

레핀. 19세기 러시아. 그 격동의 한중간을 날카롭게 그려나간 리얼리즘의 화가.

이 그림보다 더 나를 아프게 한 것은 <남자의 머리>와 <1698년 노보제피치 수녀원에 감금된 지 일년 뒤의 소비아 알렉세예브나 황녀. 그녀의 친위대가 처형당하고 시녀 전부가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라는 긴 제목의 그림이었다.
경악과 고뇌의 한 남자의 찰라의 표정과
분노와 팽팽한 긴장으로 어둠 속에서 그림 밖의 시선을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여인.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 감상자를 나꿔채는 인물들이다.

혁명.
귀뚜라미 목숨(螢命)을 기껏 그려낸 낭만적인 회고가 아니라면, 내겐 그림식으로 말하면 콜비츠와 고야와 레핀의 얼굴들이다.
혁명은 그런 것이었다.
이념보다는 밥그릇이 부른 피의 울부짖음이었고, 그 혁명의 얼굴은 가장 비참하고 또 그 비참하고 모진 목숨을 기꺼이 바치게 하는 분노였고, 그 뒷자리는 영광보다는 이런 쓸쓸함이 그림자였다.


혁명은 아름답지 않다.
혁명은 그리움의 이름이 아니다.
혁명은 모나리자가 아니고 소월이 아니고 풍경이 아니다.
흩어진 피와, 바닥을 구르는 밥덩이가 부른 터진 주먹이고 눈물이고 부르지 말아야할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