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미술관순례로 잡으면서 가장 기대가 컸던 간송 매난국죽 전.
서울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제일 먼저 달려간 DDP 간송 4부 전시회.
그 중에서 내 가슴을 쳤던, 가장 크게 남은 석 점입니다.
탄은 이정 <풍죽도>
말해 무엇하리 풍죽도.
그동안 사랑한다고 누누히 말해온 이 명작을 드디어 보았습니다.
이 전시회의 타이틀 모델 답게 따로 특별전시관을 받았더군요.
작품을 두고 양쪽으로 영상과 음악으로 오마쥬를 했습니다. 그림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관람자가 더더욱 그림의 풍정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도움한 설치가 참 좋았습니다.
분명히 화면에서는 바람이 잡힐 리 없건만, 바람의 형체를 관람자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방사형으로 뻗치는 댓잎들. 잎끝이 살짝 뻗치는 붓선과 그림자를 이루는 흐린 죽엽으로 인해 그림은 더욱 더 생명력을 얻습니다.
화면 왼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오른쪽 화면 밖으로까지 뻗어나가는 효과를 냅니다. 관람자의 귀에는 대나무를 스쳐가는 바람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밑둥이 우람한 왕죽도 아니면서 거센 바람에 맞서 굳건히 버티고 서서 온 몸으로 버티는 대나무.
한 잎 한 잎 한 붓에 치고 지나간 화필이련만 선비의 당당한 기개와 기상이 화면 밖으로 뿜어져나옵니다.
그림의 붓이면서 날렵하고 매끄럽게 삐치는 필법은 한자의 서체를 떠올리게 하지요.
서권기와 문자향을 함께 느끼는 명화입니다.
풍죽도 앞에서 가슴이 벅차서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묵죽도> 하면 무겁고 차가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보이는 주인공은 분명히 대나무이지만 화면 바깥에서 불어와 화폭을 넘어들어가는 바람도 또한 주인공임에 틀림없습니다.
바위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기상을 자랑하는 대나무의 와 바람이 남성적이라면, 부드럽게 삐치고 세련되게 몸을 뒤튼 댓잎의 모습을 보면 여성성을 떠올립니다.
흠잡을 데 없이 말끔하고 아름다운 명화, 이 그림을 보고 나면 뒤의 묵죽도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풍죽도를 보고나서 섭섭한 점이라면, 극강의 미녀를 너무 일찍 만나서 뒤에 만나는 아름다움들은 빛을 잃고 맙니다.
수운 유덕장 <설죽도>
조선 중기의 탄은, 조선 후기의 자하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묵죽화가로 이름 높은 수운의 설죽도입니다.
평생을 꼿꼿이 대처럼 살다 간 노화가의 품격과 기상이 눈 속에서 굽혀지지 않고 당당한 대나무를 통해 그대로 비춰집니다.
바람은 그쳤습니다.
밤새 내린 눈의 무게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눈보라 속에서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당당한 대나무는 남성적이면서 화면 가득 꿋꿋한 결기가 느껴지지요.나는 절대 굽혀지지않으리라, 변치 않으리라는 의지와 자부랄까, 기상이랄까. 그러면서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댓잎이 난(亂)하지 않고 꽉 차 있는 느낌입니다.
말도 안되는 습작소설 <풍죽도>의 마지막을 채워주었던 수운의 설죽도.
너무 지쳐있어서, 외롭고 힘들었던 나와 벗들 모두를 위로하면서 쓰던 소설에서, 지치지 말자고, 힘을 내자고 말하고픈 마음을 대신해 주었던 설죽도. 같은 그림은 아니나 거의 비슷한 구도의 작품입니다.
광복70년에 만나게 된 설죽도는 그 모진 눈보라를 헤치며 살다 간 고마운 선조들, 그 분들이 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일주 김진우 <묵죽도>
부끄럽게도 이 전시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름이었습니다.
몰랐기에 아무런 선입견이나 기대없이 딱 마주한 순간, 온 몸을 전율케 하는 감동을 느낍니다.
내가 느낀 감동이련만, 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말재주와 식견이 부족한것이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댓잎이 어떻고 삐침이 어떻고 하던 말은 이 그림 앞에서 침묵합니다.
일체의 치장이 없이 무서울 정도로 선연한 분기와 냉철한 의지. 아 이 분의 삶이 어떠하였을지, 그 절절한 한과 꺾이지 않는 기상이 무엇인지 단번에 가슴을 찌릅니다. 그렇습니다. 묵죽이 그냥 묵죽이 아니라 창이고 칼입니다.
화면 한 중간을 거침없이 가로질러 뻗친 대나무와 날카롭게 쳐간 죽엽의 힘이 관람자의 무릎을 절로 꺾게 합니다.
선비들의 한가로운 풍류놀음으로 생각하기 쉬운 문인화의 힘, 그 뿌리를 이렇게 뇌수를 흔드는 감동으로 깨우칩니다.
감옥에서 자리의 왕골을 뜯어 그림을 익혔다는 일주. 붓을 쥔 손끝의 힘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싸웠군요. 이런 선열들이었군요.
일제 말, 열두살 어린 나이에 만주로 가 청춘을 의병활동에 투신하고,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모진 고초를 겪은 것도 모자라 6.25때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치셨다 하지요. 하마터면 그대로 역사 속에서 비운의 항일애국지사로 묻힐 뻔 하였는데 최완수선생의 주선으로 첫 전시회를 가지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합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고 거침없이 모진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었던 저 대나무들, 선열들의 눈물과 한이 미욱한 후손의 가슴을 칩니다.
아아.아무래도 눈앞에서 직접 느낀 모골이 송연한 그 기상과 시퍼런 분노를 모니터로 대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 마음을 표현할 재주를 나는 갖지 못하였습니다. ㅠㅠ
백문이 불여일견! 가서 보세요. 아마도 나는 또 알지 못하고 미쳐 보지 못한 감동을 당신은 꼭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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