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
이성과 논리로 제압할 수 없는 그 폭압적인 힘은 때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침몰한 배의 흔적을 찾으셨나요? 화면 오른쪽 거므스름한 흔적이 바로 옆으로 쓰러진 배의 부분입니다.
거대한 유빙더미 사이로 침몰해가는 범선으로 표현된 인간의 지성과 기술은 무력하다못해 슬프기만 합니다.
거대한 자연과 늘 뒷모습을 보이며 그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고 쓸쓸한 뒷모습으로 서 있던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사람들.
인간의 나약함과 생명의 유한함, 허망함이 관람자의 가슴 속으로 찬기운을 뿜으며 들어옵니다. 그는 무력한 인간을 통해 자연으로 표현되는 신에게 경외감을 바치며 황량한 풍경 속에서 인간 삶의 무상함을 말합니다. 그 이전 세대 바니타스 화가들이 그러했듯 생명의 유한함을 통해 죽음을 상기하며 신의 존재와 경고를 떠올립니다.
그는 프랑스혁명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말세의 징후를 보았고 자신의 붓을 통해 절망을 벗어나 숭고함으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그의 화폭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길을 떠나고 거대한 자연 속에서 절대적인 고독과 맞대면하며 많은 순간, 자연의 형상마저 사라진 잊혀진 공동묘지, 폐허가 된 수도원, 인적이 끊긴 산 속에 기이하게 서 있는 높은 첨탑의 교회와 십자가 등으로 옮겨갑니다. 그것들과의 대면은 때로 경건하며 숭고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것이 극도로 치달아 처절한 허무와 모든 것을 지우고 소멸해버린 죽음의 이미지로까지 표현되지요.
창날보다 더 날카로워보이는 유빙의 조각들, 거대한 범선조차도 저렇게 산산조각내버린 빙산의 힘을 보십시오.
살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생명의 숨결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왔던 사람들은 차가운 북극의 바다속으로 사라져버렸겠지요. 이것은 아마도 살육이었을 것입니다.
벌레보다도 가볍고 하잘것없는 생명을 모조리 삼켜버리고도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거대한 얼음산.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무상하게 침묵하고 있는 청회색의 하늘. 다시금 눈이 날리고 저 얼음산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그나마 끄트머리 잠깐 내놓고 있는 범선의 흔적마저 쓸어가겠지요. 그러면 다시 저 바다는 침묵과 무의 세계로 돌아가겠지요.
서늘하고 막막한 자연- <바다시리즈>의 첫 시작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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