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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에밀리 엘

by 소금눈물 2011. 11. 29.

 

04/23/2011 02:11 pm공개조회수 1 0

새 책 창고가 바닥이 나서 전에 읽었던 책을 책꽂이에서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런데 처음 읽은 책 처럼 내용이 전혀! 기억에 나지 않는다. 완전히 처음 보는 책처럼 새로 읽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책 한 권 값을 번 것 같아 기분이 좋다가도 내 머리가 백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쯥.

읽고나니 왜 머리에 안 남았는지 알 것도 같다.
지금 금방 읽어도 줄거리가 무엇인지 감감한데.
이 책은 어떤 스토리로 읽는 게 아니라, 어지럽고 나른한 심리를 묘사한 소설이다. 주인공의 시점도 분명치 않고 화자가 누군지도 명확하지 않게 A에서 B로, 혹은 또 다른 누군가로 한 챕터 안에서 흘러간다. 구체적인 사건의 발생과 해결이 포인트가 아니라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시선에 따라 그 강 수면 위에서 반짝이는 햇살이기도 하고 강가 풀숲의 흔들리는 바람이기도 하고 저물어가는 하늘이기도 하고 그렇게 흔들리고 움직인다.

전부는 아니지만 마르그리뜨 뒤라스의 소설에서 가끔 보이는 모습이다.
<연인>에서는 어둡고 쓸쓸하고 나른하고 퇴폐적인 메콩강가의 그 사람들 이야기가 그렇게 좋았는데 이 소설은 참 춥고 스산하기만 하다. 읽다가 시점을 놓쳐서 어리둥절하기나 하고.

언제부턴지 소설읽기가 잘 안 되는데 머리가 둔해지면서 더더욱 이런 스타일을 불편해지는지. 하긴 요즘은 성석제 소설도 잘 안 봐진다.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버거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면서 소설을 쓴다고 설쳤으니 웃기지도 않군.

뱀다리 - 그런데 왜 뒤라스는 '한국'을 왜 그렇게 불편하고 이상스럽게 바라볼까? 그의 태반이랄 수 있는 인도차이나에 대한 무한한 애정, 중국과 일본에 대한 상당히 호감섞인 관점과 묘사에 비해 한국은 그녀 스스로의 토로처럼 ' 잘 알지는 못해도' 이상하고불편하고 어색한 나라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한국을 본달까. 기분이 좋지는 않군.. 하지만 뭐 탓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거야 개인의 관점이니까. 단지 문장으로 확인하면서 썩 유쾌하지는 않는 일인 것도 사실이고.

제목 : 에밀리 엘
지은이 : 마르그리뜨 뒤라스
옮긴이 : 이일환
펴낸 곳 :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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