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집에서 제법 거리가 되었다.
지금이라면 그런 거리는 당연히 버스를 타고 다니겠지만 그 시절에는 한 시간 걸어 학교다니는 것은 아무렇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걸어서 두시간은 넘어갈 거리에서 다니는 아이들도 아주 많았는데 그 동네에선 거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학교가는 길에 내가 만나는 제일 끔찍한 고충은 거리가 아니라 뱀이었다. 산허리를 돌아 수로를 한 쪽에 두고 다른 한 쪽에는 강이 흘렀는데 산뱀이나 물뱀이나 왜 그렇게 많았는지. 신작로에는 몇 마리나 로드킬된 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뱀을 볼 때마다 진저리가 쳐져 그 길이 정말 싫었다.
지금도 있을까...
길 잃어 내려왔다가 속수무책으로 자동차에 치어 죽는 가엾은 뱀들. 고향의 강에 말조개, 칼조개, 참게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 뱀들도 그렇게 사라졌을까...
이 정부가 그렇게 싫고 미운 것은, 아무 생각없이 잔인하게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고 시멘트를 붓는 그 강변에, 산들에, 그렇게 멸종되어가는 가엾은 생물들 때문에 더 그런 것이다. 생명의 울부짖음, 그 분노와 원한을 생각할 줄 모르는 저 무심함과 잔인성에 치가 떨려서다.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성석제는 성석제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어쩌면 이렇게 유쾌하고도 발랄하게 쓸 수 있는지 매번 탄복을 한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읽기가 쉽지 않았다. 여전히 유쾌하고 발랄발칙하고 톡톡튀는 캐릭터에 화려한 말발은 만발하지만... 주인공인 원두가 장난감 뱀이라고 받은 것이 하루종일 끌고 다니다 저녁에서야 진짜 뱀인줄 아는 장면에서 경악했다. 그 장면에서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팔월 한낮, 지글지글 대지가 타오르면서 내는 지열을 받으며 신작로에 납작 누워있던 그 뱀들이 떠올라, 가슴이 너무 아프고 답답해지면서였다.
갈수록 더 그런다.
사람들이 떠난 폐허에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후쿠시마의 개들 때문에 눈물이 나고, 죄없이 죽어가는 그 바다의 바다생물들이 눈물이 나고, 천지간에 눈물나는 일들 뿐이다.
바보 진용이와 진용이 엄마가 가슴아파서 읽기가 싫었다.
크리스마스잔치에서도 내쳐지는 가난한 바보, 아들의 생일에 딱 한 번 싸준 도시락이 교실바닥에 엎어지고 그 도시락 때문에 또 맞아야 했던 걸 알지 못하는 바보엄마도 가슴이 아프고 천하불한당같은 깡다구때문에 화가 나서 읽기가 싫기도 했다.
점점 더 내 심장 판막이 얇아지는 것만 같다.
더 아프고 더 여리고 더 슬픈 이야기들은 읽기가 싫다. 만나기 싫다.
내 고향의 그 작고 여리고 순한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잘...살고 있을까.
살면서 업과 죄만 더해 쌓고 있는 내가, 인간이라는 동물이 정말 싫어진다.
제목 : 궁전의 새
지은이 : 성석제
펴낸 곳 :하늘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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