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짐작하겠다 걸어가는 괴로움,
저 돌아오지 않는 사수射手를.
얼음 속에 파묻힌 그대의 모든 평년平年,
그 일평생의 밤, 가고 오는 어둠을 짐작하겠다.
더 먼길을 가고 더 먼 길을 찾아서
임자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고
눈도 귀도 없는 바람의 등허리에 업혀서
노상 죄에 묻혀 사는 우리들의 그림자.
그래 짐작하겠다 걸어가는 괴로움,
그 온갖 환란의 바다를.
그대 꿈꾸는 성채에 하염없는 기다림,
빛나는 등불의 뜻을 기억하겠다.
우리가 잃은 피로 우리의 죄는 자란다.
저 기념상의 두 눈을 쪼아 먹는 검은 이끼.
그래 기억하겠다 걸어가는 괴로움,
저 돌아오지 않는 국화國花를.
저 무궁한 어둠의 높이
무너진 최후의 보루를 기억하겠다.
옥돌에 스며든 몇 방울 은빛의 눈물,
눈물을 던지고 또 던지며
사랑도 친구들도 자주 삐걱거리고
교정 밖에서 내 자식들도 반대했고
그 점을 너희들도 지적했다 말은 없었어도.
그래 기억하겠다 걸어가는 괴로움.
저 말없는 응시의 눈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민주라는 이름으로
항간에 떠다니는 권고의 목소리를 이제 듣겠다.
고향은 자주 나를 붙든다 형벌처럼.
떠나온 저 가련한 이웃들의 웃음 속에서
어차피 우리는 죽고 살았다.
어느 때쯤일까
가고 오는 전승傳承의 어느 다리 위에서
노인장, 생각나세요,
그대 임자 내게 와서 다시 묻는 날,
내 노년의 이마 위에 떨어지는
오동잎 그늘의 찬란함을 이야기하마.
떠나간 사수는 왜 돌아오지 않고
왜 바늘은 중용의 속도로 끝없이 돌아가는가를.
그리고 여기 동봉한 구두의 한 끝까지.
- 박정만
1960년 4월 19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젊은, 어린, 이제 영원한 청년의 별이 된 영혼들을 위해.
(사진- 쓰레기차에 실려 망월동으로 실려갔던 유해들을 덮었던 피묻은 태극기. 광주민주화묘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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