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금동향로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발이 멈춰지고 숨소리가 잦아든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늘 살피고 그 뜻과 닿게 감응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영혼의 아름다움, 신성한 정신...
관람객들이 모두 이 앞에서 말을 잊고 조용해지는 것이 나 혼자만의 감동은 아니었던 듯.
반토막 한반도에 갇혀 그나마도 지역마다 아웅다웅하고 사는 지금의 후손들 꼴을 보면, 중국, 베트남, 태국 너머에 이르기까지 그 기상과 문화를 주고받던 백제인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 것인가.

밀떡반죽을 주무루는 듯 곱게 빚어올려 손끝으로 매만진듯한 저 연꽃잎들.
높이 솟은 봉래산 사이사이로 신선들의 가락이 흐른다.
그 웃음과 향로사이로 흐르는 향이 잡힐 듯 아른거린다.
박물관 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전시실이다.

그 유명한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상
햇빛의 움직임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는 그 미소를 재현하기 위해 조명이 천천히 바뀐다.
자애롭고 인간적이면서도 소박해서 아름다운 부처님의 미소.
저 먼 피안의 세계에 가 닿아 홀로 위대하고 높은 뜻이 아니라 , 사바대중의 고통과 번뇌를 함께 바라보며 품어주시는 부처님의 얼굴이다.
나도 모르게 찬탄이 절로 나온다.
아 백제인의 미소는 저런 것이었다 진실로.

연꽃무늬 벽돌


용무늬, 산경치무늬 벽돌.
위 쪽것은 어렸을 때는 용문이라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삼족오인 것 같다.
아래쪽 벽돌은 어렸을 때는 산수문전이라 배웠는데 풀어쓴 우리말이 어색해서 여러 번 되뇌었다.
집을 짓는데도 저렇게 벽돌을 치장해서 얹고 올렸을 사람들의 맵시와 마음씨에 할 말을 잊는다.
백제인의 호화로움과 여유, 손솜씨는 지금의 우리가 오히려 부끄럽다.
흙만으로 빚어 어찌 저런 벽돌이 나올 것이며 수 천 년을 건너와 저렇게 생생하게 빛나는 문화백제의 힘이 대단하다.



당당하고 우아하면서도 당찬 기상이 느껴지는 백제의 와당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보도블럭도 저런 무늬를 못 갖는데 백제사람들은 정말 대단했구나.
벽돌의 문양 하나만으로 봐도 백제문화의 절정이, 그 힘이 절로 느껴진다.

의자왕을 찾기 전에 만나보는 그림.
그 날에 꽃이 지듯 떨어졌던 여인들의 자취가 저기 낙화암 어디 붉은 꽃으로 돋아날 것만 같다.

낙양 북망산 아래 마을에서 발견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의 묘지석이다.
묘지석이 이리 나뒹구니 영영 그 주인의 무덤은 찾을 길이 없어지고...
한때 그 덕스러움과 영광이 '해동증자라' 불리게 했다는 의자왕
서글프고 한스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 왕의 잠자리는 영영 찾을 길이 없구나...

백제시대 유일한 석비로 사택지적비이다.
1948년 부여읍 관북리(官北里) 도로변에서 발견되었다.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부여에 신궁(神宮)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도로에 깔려고 부여 읍내에서 초석이나 지대석 등을 모아두었는데, 그 석재 속에서 학자들이 발견한 것이다. 당시 온전하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높이 102cm, 폭 38cm, 두께 29cm의 것만 전한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0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백제시대의 유일한 석비이다. - 라고 자료에 소개되어있다.

백제의 대신이었던 사택지적이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한다.
의자왕 시기였다 하니 노신(老臣)의 한숨이 저절로 돌 밖으로 스며나오는 듯 하다.

박만식교수 기증실이다.
싸우다 망한 나라, 왕과 태자와 그 일족이 외국으로 끌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죽고 왕실은 멸절되고 군사들의 군창터까지 잿더미가 되어버린 나라.
아무리 빛나고 드높은 문화를 가졌다 한들 이렇게 철저히 망가져버렸으니 후손에게 자랑할 것이 무엇이 남아있을까.
적국에 나라를 빼앗기고 그 후손에 의해 이 나라는 왕이 향락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오명이 두고두고 역사에 남게 하였으니 선조는 죄인이 되었고 후손은 서럽구나.
기와 몇 점, 옹기 몇 점으로 살펴보는 마음은 눈물겹고 아프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오는 발길이 무겁다.
하지만 장렬히 싸우다 부서졌으니 욕될 것은 아니로구나.
맨 마지막 목숨까지 다 바쳐 사직을 지키다 스러진 나라, 왕이 떠났어도 남은 백성이 나서서 나라를 일으키려 마지막 숨결까지 보탰던 나라.
아아 백제여 진정 아름다웠구나.
그대 영광스러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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