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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연인의 마을

동문회

by 소금눈물 2011. 11. 10.






아우 손목 아파..
아무리 화가 났대도 여자손목을 이렇게 우악스럽게 잡고 질질 끌고 나오는 사람이 어딨대요?





윤미주씨 엉덩이는 참 내성적인가봅니다.





네? 뭐, 뭐라구요?
제 엉덩이가 어때서...
아니 말을 알아듣게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말해봐요.





윤미주씨 입은 만만한 깡패새끼한테만 소리지르나 보죠?





뭐, 뭐요?





싫다는 말 모릅니까?
손 치우라는 말 모릅니까?
아님, 내가 눈치없이 방해한 겁니까?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왜 그때 소리치지 못했을까요.
동문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태윤선배를 무안하게 할 수없다는 생각 뿐이었는걸요.
나만 조금 참으면, 뭐 앞으로 안 보려고 하면 안 보고 잊혀질 사람인데 동문들 모두 모인데서 망신을 당하면 선배는 얼마나 우스워질까요.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시끄러워지면 선배보다는 나를 더 욕하겠지요.
웃기지만 아직 우리 사회 이러니까요.
여자가 당해도 욕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거, 웃고 넘어갈 실수를 뭘 그렇게 요란떨면서 남자 얼굴 구겼냐고 아마도 그러겠지요.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화내는 건 그래요.
물론 당신한테야... 내가 뭐 버럭버럭 화도 내고 만나기만 하면 쌈박질도 하고 그렇지만요... 근데 그게 "깡패새끼"라 그러는 게 아니라... 그니까 당신 말대로 당신 무시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니까 당신이 태윤선배보다는 좀 편...아니 선배는 이 사회에서는 막강...아니 당신이 힘이 없어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아이 왜 이렇게 말이 궁하니. 이게 아닌데....





내일 아침 열시까지 준비하고 있어요.
신도 가야 하니까.





네, 신도.
네? 신도면 우리집, 아니 우리집은 왜요?





아, 알죠, 가 보면 알겠죠.
근데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근데 가기 전에 알면 안될까요? 이유를 알아야 따라가든 말든...





아이 깜짝이야.
아니 지난 일은 자꾸 들추고 그래요. 진짜 사람 쪼잔하게.
그래요, 아깐 이유를 몰라서 잠자코 있었어요!!

뭐 말만 하면 버럭질이야.
이런다고 자기가 뭐 조선시대 종사관처럼 멋있게 보일 것도 아니면서.





그 난리를 치면서 밖에 끌고 나왔으면 택시는 자기가 좀 잡아주면 안되나.





저러고 성질 부리고 가면 폼 나는 줄 아나.
하여튼, 인간이 좀 정이 갈만 하면 도로정나미예요.





잡혔던 손목이 그때까지 욱신거렸습니다.
보기보다 제 손목이 많이 청순해요.
내일 쯤엔 제대로 멍이 들겠네요.






신도는 왜 가자고 한 걸까요 갑자기?
내가 만나달라고, 제발 말 좀 해보자고 쫓아다닐 때는 본 척도 안하더니.

근데... 그가 휭하니 떠나고나자마자 마음이 싸해졌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무언가 가슴에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사람... 그러니까...나를 본 걸까요?
지금까지 몇 날을 같이 있었고 예기치 않은 여행 길동무도 한 셈이었고 이래저래 엮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나를 본 적은 없었겠지요.
그에게 나는 애인 옆집에 사는 이웃여자였고, 채무자였고, 그걸 미끼로 이용가치가 있는 어떤 사람이었겠지요.
그런 이유로는 다른 남자와 엉켜 춤을 추고 있는 걸 화를 내면서 끌어낼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에게 윤미주는 세상 하고 많은 얼굴들 중 하나, 그러니까 아무 특별한 의미도 되지 못하는 보통명사였겠지만 어쩌면... 그에게 오늘밤의 나는 그가 처음으로 나를 의식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바라본 윤미주라는 여자, 그러니까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싫고 화가 나는 고유명사로서의 윤미주가 아니었을까요.

아니, 아니 그럴 리는 없어요.
터무니 없는 생각이겠지요.
내가 이렇게 늘 한발짝 앞서가고 이게 고질병이예요. 알아요 나도.

이래서는 안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어쩐지 그가 질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제대로 했다면 주먹부터 날리고 시작했어야 했다.-
아니라면 왜요? 태윤선배가 그에게 무슨 나쁜 짓을 했다고 맞아요?
화를 내야하는 건 나지 그가 아니잖아요.
그가 뭐라고 선배에게 화를 내요? 내가 뭐 자기 여잔가...

자기도 이 상황이 얼토당토않다는 걸 아니까 뒤늦게 무안해져서 안 들키려고 저렇게 후다닥 가버리는 거 아닐까요?
아 알아요, 내가 지금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있다는 거.

갑자기 혼란에 빠졌습니다.
내 생각이 착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니 그게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내가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이렇게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고 왜 신도에 가자는 걸까요?
설마 신도에 같이 가자고 우리학교 동문회를 다 수소문해서 뒤풀이자리 쫓아와 나를 데리고 나온 것도 아니고, 저렇게 불쑥 던지고 가면 내가 무슨 생각하라구요?

동문회는 엉망이었습니다.
순정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근데... 동문회 생각은 지금 나지도 않아요.
이 마음이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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