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아원에서 자란 놈과 아닌 놈, 딱 두 부류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고아원도 한가지가 아니었나봐.
저렇게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이 비누방울처럼 동동 떠있는
그런 고아원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껏 몰랐어.
여긴 참 이상해.
낯설어... 근데 이 낯선 게 어쩐지 싫지가 않아.
태산이 웃는 거, 형도 처음 보았지?
저런 조무라기 꼬마들과 공을 차며 웃을 수 있는 녀석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형은 고아원이 어떤 데인지 모르지.
내가 자란 고아원에는 말야. 그네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 그네를 한번도 타본 적이 없어.
그건 우리같은 고아들은 손도 댈 수 없는 것이었지.
그 그네는 원장아버지 아들만 탈 수 있는 것이었어.
우리는 고아원에 사는 고아였지만 그 녀석은 집에서 사는 놈이었으니까.
아마도 태산이도 그랬을거야.
태산이도 저렇게 공을 차면서 신나게 웃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을 거야.
세상은 언제나 나와 등돌리고 있다고만 생각했어.
등돌린 세상이 언제 나한테 칼을 꽂을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주먹을 쥐고 세상을 보았어.
그런데... 아닐 수도 있었나봐.
좋은 고아원과 나쁜 고아원이 있었나봐.
나는 운이 좋지 않은 쪽이었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던가봐.
이 녀석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어.
기운이 뻗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야.
아이들은 원래 이런 거야?
민지도 이런 얼굴을 갖고 있어?
나는... 없었어 형...
아이들은 눈치를 보지 않고 자라야 하나봐.
부끄러운 것도 없고 혼자 아프지도 말고
조금 가난한 부모를 가져서 좋은 옷을 입지 못하는 때가 있더라도
맛있는 군것질을 조금 덜 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아이들은 그 부모의 사랑으로 마음이 고프지 않으면 되는데 말야.
제일 중요한 건... 그것이었을텐데 말야.
민지가 먹는 요구르트를 이 아이들도 먹겠지.
이 고아원의 아이들 아버지도, 형처럼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보며
아이들의 숨소리를 가슴 뻐근하게 고마워하겠지.
그럴 수도 있는 것이었구나...
여긴... 내가 자란 곳과는 그렇게 다른 곳이었구나...
이런 곳이었다면 나는 아마 많이 다르게 살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러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어쩌면 말야...
그랬다면...
나는 길을 잃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전히 가난해서 공부는 다 못했을지도 모르고
그다지 똑똑한 사람도 못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온 마음을 다해서 나를 구하려 애를 쓴 사람의 눈빛이 어떻다는 걸 알 수는 있었을 거야.
진실한 마음이 어떤 눈빛을 갖고 있는 지는 나는 알아볼 수 있었을 거야.
지금의 내 모습이 한번도 내 잘못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나를 버린 부모 탓이고 그런 나를 함부로 짓밟은 세상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들려고 해.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을 해.
어떤 사람에게 조금 떳떳한 모습이었으면...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아니 그건 아니어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하고 말야.
어린 나를 저 아이들 속으로 보내고 싶어.
늘 춥고 외로왔던 어린 나, 어딘가에 늘 멍자국을 달고 주눅이 들어있던 나를
저 물방울 아래로 밀어서 저 아이들과 함께 뛰놀게 해주고 싶어.
정말 정말..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은데...
저렇게 한번 놀아봤으면 좋았을텐데...
누군가 나와 함께 놀아주고, 웃어주고, 아픈 나를 위해 밤새 기도해주고
하나님이 너를 버리지 않으신다 속삭여주고...
그랬다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까...
아까부터 무슨 소리가 들려.
가슴 밑바닥에서 쩌엉~ 소리를 내며 무언가 갈라지는 것 같아.
봄빛같아...
참 따뜻한 봄날같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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