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는 떨어진 주사앰플을 찾다가 강재가 신던 슬리퍼에서 떨어진 꽃장식을 보았습니다.
한참을 손에 들고 바라보네요.
그랬군요.
이 방에서 그가 묵었었지요...
뭐 합니까?
그의 음성이 문득 귓가에 흐릅니다.
뭐하는 겁니까?
미주는 약병을 떨어뜨렸습니다.
그 날 아직 그 사람과 그렇게 친하기 전이었지요.
짜증섞인 목소리로 툴툴툴...
그저 못마땅하던 강재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뭔데요오~
얘들 똥그래서 잘 굴러다니잖아요. 떼굴떼굴~
마음에 안들때면 두목님의 말끝은 더 길어지는 버릇이 있지요.^^
떼쓰는 아이 같고 투덜대는 꼬마같고-
그 무서운 깡패들과 싸우던 모습은 생각도 못할, 영낙없는 투덜이입니다.
아픈 허리를 잡고 침대밑을 기웃거리는 두목에게 미안해서 다음에 찾겠다는 미주에게
얼른 찾자, 그거 나중에 나 먹이면 어떡하냐고 밉살스런 소리를 하던 강재.
이봐요 하두목님~!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올려다보는 강재에게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가라앉히며
안먹여용~
저 그런 개념탑재요망 닥터 아닙니다.
갑자기 말소리가 코맹맹이가 되어버렸네요.
내가 날개만 없지 천사 비스무리하다는 얘기도 막 듣구
그르그등요
약을 떨어뜨린게 아니고 먹은 겁니까?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주사기만 들면 눈이 초롱총해집니까?
혹시 내 엉덩이에 사심있습니까?
어쩌면 이사람 말 참 이쁘게도 하십니다.
어이없어 화가 난 미주와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졌네요.
그런데, 두 사람은 알았을까요?
이렇게 편하게 토닥거리며 싸우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줄은
이런 것들이 그들이 나중에 그토록 그리워 하는, 그 기억이 될 줄은.
아뿔싸.
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랍니까.
정신차려요 의사선생!
당신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그, 그, 그러게나요...
무슨 생각을 하긴 해야는데
머리속이 텅 비어서;;;
근데 두목님.
두목님은 지금 무슨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무언가에 뒷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표정이신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어째 분위기가 ...
아니 지금 뭐라는게 아니고, 어째 좀 ;;;
뒤늦게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두목님의 말에
비로소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말이지요..
심각하게 의문이 드는 게
윤선생은 그렇다 치고
두목님의 그 엄살이 상당히 늦은 것 같은 느낌이 온다는 거지요.
아 네, 이건 물론 억측일 수 있습니다.
근데 자꾸 좀 의문이 생깁니다.
솔직히... 딴 생각 하셨죠?
싫지 않으셨지요?
에이~ 다 보인다구요.
그거 안 들키려고 그렇게 엄살부리고 더 투덜거린 거지요?
어쩌나 그거 다 늦었는데
우리한테 다 들켜버린 것 같은데 말이지요.
안 내려 갈거냐..
아 물론, 내려 갑니다, 내려가야지요.
의사선생의 순발력이 떨어지는군요.
미주씨, 당신도 좀 혐의가 갑니다.
어쩐지 미필적고의가 분명히 의심된다는 거지요.
이거 습관 아니셨습니까?
두목님 침대만 보면 뛰어들어 보는 거.
아니라구요? 미쳤냐구요?
아 뭐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뭐
아님 말구, 뭘 그렇게 화를 내신담, 더 이상하게 보이게.
황망하게 서둘러 벗어났지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했습니다.
아픈 사람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나 미주는 창피해서 말을 더듬지만
이상하게 자꾸 얼굴이 달아올랐네요.
다른 때 같으면 그렇게 다다다다 변명을 잘도 할 것을
뭐라고 대꾸할 말도 까먹고 말이지요.
그녀가 밉지 않았습니다.
엉뚱하고 실수연발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습니다.
저렇게 덤벙대는 여자는 처음 보았습니다.
잘난 체도 어지간히 하는데 그런데 자기에겐 저 사람의 구멍이 숭숭 보여요.
그게 자꾸 눈에 들어와 아른거립니다.
아무리 소소하고 작은 추억이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지키는 사람에겐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한 번의 추억이라도 백 번의 무게였다면
그것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라고 미주는 말했지요.
하지만 미주가 모르는 게 있습니다.
미주에겐, 백 번의 무게로 남은 <추억>이겠지만
강재에겐 그 추억이 일생 간직할 기억이 되고 말았다는 것.
그 마음에 행복의 빛깔로 가득 채워넣은 단 하나의 냉장고가 되었다는 것.
누구도 더 무엇인가를 넣을 공간을 남겨두지 않고
그리고 또 아무도 꺼내갈 수 없는 그 전부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
그것을 미주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미주는 알고 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그 사람은... 고마워요, 살려주어서.. 했던 그 말이
고마워요, 사랑하게 해주어서...
그 말로 들렸다는 걸요.
그리고 그게 어쩌면 진실이었을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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