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만나기 전에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빈 들판을 떠돌다 밤이면 눕는
바람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긴 날을 혼자 서서 울던
풀잎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집도 절도 없이 가난한
어둠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바람도 풀잎도 어둠도
그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몰라
--- 안 도현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가장 은밀하고 아름다운 교감의 한 장면이다.
지극히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몸의 실루엣을 보면서 단지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조각의 예술적 형상화가 아니라 그 형상의 아름다움, 내면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역시 거장의 손길답다.
그런데 나는 이 조각을 볼 때마다 (아니 정확히는 조각사진)왜 쓸쓸하고 울적한 마음이 먼저 들까.
키스.... 연인들의 뜨거운 입맞춤의 비밀한 순간.
그런데 보라.
여자의 몸은 금방이라도 남자의 무릎에서 미끄러질듯이, 아니 흘러내릴 듯이 전신을 기울여 몰두해 있다.
남자의 목을 감싸고 올라간 왼 팔과 남자의 왼 팔에 걸쳐진 오른 팔이 무너져내릴 듯한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다.
키스에 몰두한 여자의 기울어진 머리는 이 행위의 주체가 본인임을 드러낸다.
그에 비해 남자는 어떤가.
혹시라도 여인의 열정이 두려운 건가, 부담스러운 건가
마지못해 응하는 듯이 겨우 얼굴만 여자쪽으로 돌렸을 뿐이고 허벅지에 내린 손도 열정이 없다.
그에겐 마치 부담해야할 어떤 채무처럼 보인다.
그의 오른팔은 여자의 벗은 허벅지 위에 그저 "얹혀졌"을 뿐이고 꼿꼿한 등허리는 이 뜨거운 전장에서 그가 승리자임을 드러낸다.
오, 덜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칼을 쥐고 있음이니.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
몇 푼의 수고료에 옷을 벗은 모델 중 하나였을까.
몸을 주되 영혼을 주지 말라는 사랑의 냉혹한 경구(警句)를 잊은 끌로델이었던가.
서로가 몰두하지 않은 열정의 뒤끝이 어떠할까.
볼 때마다 아름답고 지극하지만, 그래서 더 쓸쓸하고 불안한 사랑의 그림자를 만나는 게 두려운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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