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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리본
by 소금눈물
2011. 11. 7.
06/17/2006 01:5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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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들이 서로 오래 살아라 하는 뜻을 올봄에는 알 것도 같습니다.
마음만 흘러갈 뿐, 가엾고 방법이 없어, 세월에 기대자고 하는 말인 것을요.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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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진실의 위치가 어딘지 아는 사람, 그 위치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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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책상 앞에서 일어나 잠시 쉬기 위해 침대애 누웠다.
무거운 다리를 쭈욱 뻗어 올려 벽에 걸치고 .......
열린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펄렁 들어올리고는 내 무릎 사이를 훑고 지나간다.
바람 속에서 농익은 수박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여름이다.
여름의 감정들은 다양하고 격렬하다.
여름 자체만으로 드라마가 존재하는 계절,
작열하는 새하얀 햇볕의 비현실적인 정적, 주룩주룩 장맛비가 쏟아지는 나날에 집에 어리는 어둑한 습기 속에서 느끼는 본능적 추위와 슬픔,
폭풍이 몰아칠 때면 집 밖으로 뛰쳐나가 그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미칠 것 같은 열정,
길고 뜨거운 오후의 권태와 어스름 저녁에 낮잠에서 깨었을 때의 버려진 듯한 오슬오슬한 한기,
더위를 못 이기는 폭염의 밤에 옷을 다 벗어 던지고 겪게 되는 짐승같은 염오와 고독,
그리고 집채만큼 큰 흰 구름을 보면 떠오르는 가슴 아린 생이라는 동화.....
눈을 감고 있으니 여름은 뱀처럼 빠르게 기억 속의 다른 여름들 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몇 살이었을까.
아마도 네 살, 다섯 살이 아니었을까
첫 여름의 기억을 가진 나이는.
마을 어른들이 타작마당에 멍석을 펴고 모여 앉아 모깃불을 피워놓고 긴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시절 어른 들은 이야기 할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여름 내내 밤에서 밤으로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어른들 곁에서 마을 언니들과 자꾸만 풀 우산을 만들었다.
우산살처럼 생긴 골풀은 마당가에 지천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밥그릇만큼이나 커다랗고 너무 많고 빙글빙글 도는 듯 흔들려서 자동차처럼 하늘 위애서 내달리는 것만 같았다.
더러는 충돌한 듯 산 너머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면 언니들을 따라 두 손을 얼른 모았지만 기도를 채울 내용은 아직 없었다.
그저 힘껏 풍선을 부는 것 같이 간절히 두 손을 모은 빈 기도를...
p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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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로부터 그처럼 한결같이 사랑을 받는다면 그 존재가 어떻게 신성해지지 않겠는가.
p 64
제목 : 붉은 리본
지은이 : 전경린
펴낸 곳 :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