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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삶을 내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오캄의 면도날처럼 매력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명의 깔끔함이 아니라 사실 앞에서의 겸손함이다.
p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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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긴 생애 동안 발표한 단 몇 편의 '기념시'들을 근거로 그의 시세계 전체를
깎아내려는 시도 역시 옹색하다.
누군가가 미당의 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화사집>에 실린 스물네 편의 시만으로도,
한국문학사는 그에게 경의를 표할 만하다.
결국 미당의 삶은 시시했지만, 그의 시는 시시하지 않았다.
p 60
'기교'라는 말의 뉘앙스는 대개 부정적이지만,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기교다.
기교가 곧 예술은 아니로되, 기교 없는 예술은 상상할 수 없다.
P 99
어린 아이들이 "이거 뭐야?" 라며 끝없이 사물의 이름을 묻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이름주림(이름에 대한 주림 : Namehunger)이라고 부른다. 이름주림은 자아와
세계의 교통을 개시하고 촉진한다. 이름이 곧바로 사물의 본질은 아니지만,
사람은 대체로 호명을 통해서야 사물의 내부와 잇닿은 문턱을 건너게 되기 때문이다.
p139
내 살아 있는 어느 날 어느 길 어느 골목에서
너를 만날지 모르고 만나도 내 눈길을 너는 피할 테지만
그날, 기울던 햇살, 감긴 눈, 긴 속눈썹, 벌어진 입술,
캄캄하게 낙엽 구르는 소리, 나는 듣는다.
이성복 <연애에 대하여 中>
확립된 권위에 대한 추종의 관성 (!)
p 205
고종석
-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