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이 이렇게 맹숭맹숭하고 심란하기만 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쓴 글을 남들이 재미와 감동으로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꿈꾸며 오지 않을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나 같은 얼치기 문청이, 이런 책을 읽으며 이런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글의 구성이나 캐릭터나, 주인공이 빠진 딜레마를 생각하면 나 같은 부류들이 모두 꿈꾸어보았을 덫이고 부질없는 희망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공감보다는 울적하고 지루하고 어지럽기만 했다.
문제는 내가 '소설읽기'를 매우 게을리하는 인간이라는 점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안 읽는 문청..크...)
언제부터인지 정말 소설을 안 읽는다. 본디 외국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근자에 우리소설을 읽은 기억도 까마득하다. 하기야 소설 뿐이랴, 시며 수필이며 그 좋아하던 문학평론도 사 본지 오래다. "시가 읽히지 않는 모진 세월" 덕이라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근자에 내가 읽는 책들이 거의 인문학책이다보니 정말 소설읽기가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도무지 읽히지 않고 재미도 없다 (!) 아마도 그래서 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다 그 모양으로 미성숙하고 단면적이고 지루하고 뻔한 삼류들이겠지만.
영혼을 팔아서라도, 세상이 나를 위대한 작가로 기억해주고, <위대한 유산>과 나란히 내 작품이 서고에 꽂히는 영광을 누리고 싶지 않은 소설지망생이 누가 있을까. 바로 그 순간, 악마에게 내 혼을 뺏기고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도둑질당하고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못하면서 그림자로 세상을 떠돌게 될 지도 모른다 해도.- 상상만으로도 오싹하고 끔찍하리만큼 강력한 유혹이겠지. 물론 천만다행히 내겐 악마가 탐을 낼 재주가 없으니 이런 유혹은 받지 않아도 되겠지만.
엔딩은 자못 반전이다 싶긴 했지만 내내 답답하고 심란해서 솔직히 별 재미는 모르겠다. 그런데 읽으면서 <베를린 천사의 시>가 생각났다. 그 울적한 흑백영화를 난 참 좋아했는데, 별로 재미를 못 느꼈다고 투덜대는 이 책을 왜 그 영화와 비슷하게 떠올리는지 나도 모르겠다만.
에혀. 머리도 돌이 되었고 가슴은 더더욱 시멘트가 되어버렸고. 파삭파삭 부서지는 돌가루를 날리며 앉아 있는 꼬라지라니. ㅠㅠ
그런데 정말 그러네.
이 폴더에 소설책을 올리는 것은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제목 : 천사의 게임
지은이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옮긴이 : 송병선
펴낸 곳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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