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정화에 부심한 청 왕조 옹정제의 통신 체제
TIP;
옹정제
청의 제 5대 황제.
이름은 윤진, 강희제의 네째 아들, 강희제의 61년에 걸친 재위에 이어 44세의 나이에 즉위했다. 외교 면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부왕에 비해 내정을 충실하게 하는 데 힘을 쏟았다. '문자의 옥'으로 사상을 통제하고 새로운 세재(지정은地丁銀)을 제정하는 등 재임 중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태자 밀건법
황태자 자리를 놓고 고민한 강희제의 모습을 보고 , 또한 직접 그 소용돌이 속에 있던 옹정제는 황위 계상 문제를 해결하고자 새로운 밀건법密建法을 창설했다. 밀건법이란 정대광정이라 적인 궁전의 액자 안에 황태자의 이름을 적어 밀봉한 후 황제가 숨긴 이후에만 열어 볼 수 있도락 한 제도이다. 이후 왕자들은 황제의 환심을 사고자 애를 썼다고 한다. 청조淸朝에 우둔한 황제가 적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청나라의 세 왕
강희康熙(청나라 성조 때의 연호)와 옹정雍正(청 나라 세종 때의 연호)과 건륭乾隆(청 나라 고종 때의 연호) 이 3명의 왕은 청 왕조의 전성기를 누린 황제ㅔ들이다. 강희의 치세는 61년, 옹정은 13년, 건륭은 60년이었다.
강희와 건륭이 워낙 오랫동안 중국을 다스린 탓에 그 사이에 낀 옹정제의 치세는 얼핏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사실 이 때만큼 황제의 권룍이 중국의 구석구석에까지 미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도 옹정제는 진정한 독재자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소개한 편지는 이 옹정제가 지방 관료에게 보낸 사사로운 편지다. 지방 정치의 상황에 대해 즉시 보고하라는 내용이 담긴 이 두 편지에는 사실 독재를 지탱하는 큰 비밀이 담겨 있다.
옹 정주비유지
1772년, 61년의 재위 기간을 자랑하는 강희제가 사망하고 제 4황자 윤진이 다른 황자 34명을 물리치고 45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부군府君 강희제는 같은 황태자를 두 번 폐위한 쓴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임종할 무렵에도 후계자를 지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황제로 지목되었을 때 옹정제 본인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옹정제는 오랫동안 궁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보고 듣고 경험을 쌓은 이였다. 또한 부군의 결점에 대해서도 그 나름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 틀림없다.
옹정은 즉위한 이듬해, 상하 지방관에게 각각의 준수 사항을 논한 칙령을 내리고 숙청을 면했다. 뇌물과 명상을 바라고 붕당을 지어 황제의 독재정치를 마비시키는 관료의 악폐가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료는 과거 시험으로 선발했다. 그러나 이 시험에 합격하려면 적어도 10년 정도는 학문을 갈고 닦아야 했으므로 사실상 돈 많은 상류층이 아니면 아예 시험 준비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교제권에 따라 출세가 좌우된 탓에 권세를 누리는 자 밑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붕당이란 형태로 하나의 세력을 형성했다.
당연히 수많은 뇌물이 오고갔다. 뇌물의 출처는 관료가 자기 관직을 이용해 부당하게 얻은 돈으로, 옹정제가 이러한 악폐를 근절하고자 생각해 낸 방법은 주접奏摺이라는 '사사로운 서신'私信의 활용이었다. 본래 지방 장관은 제본題本이라는 공문서로 중앙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이 제본에는 지방 정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혀 있는데, 정부 기관의 육부六府와 내각을 거친 후에 황자에게 도달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생생한 정보를 전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지방 장관이 황제 개인에게 비공식적으로 보낼 수 있는 주접을 더욱 광범위하게 걷어 들이고자 제도로 확충한 것이다.
지방관에 부임하는 지부知府이상의 관리는 먼저 옹정제를 알현했다. 이때 옹정제는 가늘고 긴 열쇠가 달린 접갑摺匣이란 상자를 주었다 열쇠는 옹정제와 관리가 각각 나눠 가졌고, 비밀을 엄수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접갑 안에는 어떠한 말을 써도 처벌하지 않았다고 한다. 옹정제는 이렇게 관리들이 보낸 사신을 읽고 붉은 먹물로 답장을 써 다시 접갑 안에 넣어 반송했다. 이 주필朱筆이 주비유지朱批諭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옹정제는 관리가 보낸 사신을 이요함으로써 전국에 자신의 정보망과 감시관을 두었던 것이다.
군주의 자각과 기개
하루 동안에 지방에서 올라온 사신의 수는 적게는 20-30통, 많게는 50-60통에 달했다고 한다.아침 4시 전에 일어나 정무에 매진한 옹정제는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밤에 이 사신을 읽었다. 옹정제의 거실에는 위군난(爲君難 군주노릇을 하기 어렵다)의 세 글자가 적혀 있고 그 양 옆 기둥에는,
원이일인치천하(原以一人治天下)
불이천하봉일인(不以天下奉一人)
의 대련對聯이 적혀 있었다.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이며,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말로 놀라운 자각과 기개가 아닐 수 없다.
원이일인치천하(原以一人治天下)
불이천하봉일인(不以天下奉一人)
일인은 천하를 다스리기 바라고
천하는 한 사람을 받들기를 원치 않는다...
직역으로 하면 이럴 것 같은데
내가 틀렸나? ㅡ-_-a
p. 252-253
와타히키 히로시 외 <디오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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