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別離

by 소금눈물 2011. 11. 16.

別離

06/10/2005 09:24 pm공개조회수 1 0





가끔...
그렇게 혼자 생각해보는 날이 있었습니다.
초라한 옥이의 방에 놓여있던 저 수틀..
부귀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저 화려한 모란꽃 수, 옥이는 무엇을 생각하며 언제 저 수를 놓았던 것일까...
한성에서 상대를 찾기 어렵다는 검의 고수인 다모 장채옥. 수련장에서 격검을 하고 포청의 임무에 따라서 기찰을 다니고...
언제 저런 비단에 꽃수를 놓으며 남모를 꿈에 젖었던 날이 있었을까...



어느 밤을 생각합니다.
전옥서를 파옥시키고 고육지계로 옥이를 산채로 보내고 잠 못 들던 그 사람의 밤.



파옥의 책임을 물어 파직당한 종사관이 마지막으로 돌아보던 포청 옥이의 처소.
주인의 온기를 그리며 낡은 옷가지와 검을 쓰다듬어 보던 그 사람.
벽에 기대 있던 수틀을 그는 어둠 속에서 보지 못했지요.
누구보다 고운 비단옷 입혀보고 싶었을 그.
풀기가 없는 무명옷과 여인네에겐 어울리지 않는 검을 쓰다듬으며, 그는 말이 없었지만, 그 처연한 침묵은 오랜 공명으로 우리를 아프게 했습니다.

칼을 쥐어주어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지만 그 칼을 주어서 그 아이를 매번 위험에 처하게 했던 것이 아닌가..
포청의 일이라면 백척간두, 배수진을 치고 뛰드는 그녀, 그 마음속을 짐작하지만 번번히 그는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던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도 없는, 언제 다시 복귀할 지도 모르는 좌포청, 아버지의 유훈이 아니라면 공명은 그의 뜻이 아니었을 것이나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선 그 보잘 것 없는 지위가 필요했을 그...

그는 어둠 속에서 오래 말을 잃은 채였습니다.
그 모습을, 저 꽃은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겠지요.
남몰래 품었던 그녀의 꿈, 그 꿈을 꾸게 했던 사람의 따뜻하고 쓸쓸한 손길을...



임무로 떠나는 것이 아니면 그의 옆을 멀어져 본 적이 없던 그녀.
수월대사의 곁에 자신을 떨궈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서울로 간 그가 다모로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그 행복하던 날들의 기억.
높디 높은 좌포청의 지붕이, 그 사람의 곁이라면 무서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고 마냥 기껍던 날의 기억도 아직도 선연한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며 자꾸 돌아보던 그녀...
곱던 다모 정복을 벗고 이제는 무비사의 관비로 가는 그녀를 보내는 그의 시린 눈빛...



그녀는 그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 휘청, 흔들리던 그.
눈을 깜박이며 젖어오는 눈시울을 애써 보이지 않으려던 그를...그녀는 알았을까요.



사사로운 정으로 마음에 두지 말아라...
아버지의 유훈은 아득합니다.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만 살아 있음을 느낀다던 그녀의 말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경팔맥이 끊어지고 의식을 놓아버린 그 밤, 불단 앞에 엎드려 하늘에 대신 명을 구하던 그 밤의 자신의 울음소리가 이렇게 사무치게 다시 그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 그녀는 관아의 비녀(婢女)로, 그는 다른 이의 지아비로 이렇게 멀어져가는 이 순간이 그는 차마 믿기지 않습니다.



그녀가 없는 날들을 그는 어떻게 살 생각을 했을까요.
그가 없는 날들을, 이따금 풍문처럼 한 젊고 용맹한 종사관과 그의 현숙하고 아름다운 아내의 이야기를 감감 전해들을 그녀는 또 어떻게 살 생각을 했을까요...



자주빛 도투락댕기가
포청 마당을 나비처럼 떠다녔다.
이것이사 차마 안될 마음으로
밀어내고 베어내어도,
내 의지보다 늘 한 발 먼저 와서
소리없이 나를 적시고 물들이던 이 마음
한 가슴의 한 뼈처럼
나 보다 먼저 내 길을 가 있는 너에게
어찌 기쁨 뿐이었겠느냐
어찌 반가움 뿐이었겠느냐

개 돼지 같은 서출에게도
상하가 있고 반상이 있다더냐
너에게 나는 서푼짜리 상전이고
나에게 너는 목숨같은 상것인데
우리는 무엇이 무서워서 돌아섰던 것일까

네 정을 알기로, 놓지 못하고 괴로웠다
내 한을 알기로, 너는 나를 밀어내며 서러웠다.
사내가 되어 한 계집을 아프게 바라보던 마음
계집으로 태어나 제 정인을 보고도 눈 감아야 했던 마음
그렇게 우리는 바라보면서 서러운 사람으로
한세상 아프고 아프게....이렇게 걸어왔다.

이마저도 아니라는 구나
이것조차 죄라는 구나
나야, 일평생 지우지 못할 그 얼굴 가슴에 품고
엄동설한 맨발로 살아간다 해도

너는 잊어다오.
너는 나를, 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어도 이미 서럽게 안은 그 정한을
모두 잊고..잊고...잊어버리고
그렇게 살아다오
보아도 품지못할,
은애해도 주지 못할 정은 베어버리고
너는...그렇게 살아다오..

다시는 나를 위해 살지 말거라.
네가 살았던 내 생애
이처럼 사무친 한으로 다시 겪기 두려우니
다시는, 나를 위해 살지 말거라
옥아...
다시 부르지 못할 사람아...

'그룹명 > 그녀는 다모폐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지 순례 5. <담양 소쇄원 - 1>  (0) 2011.11.16
소쇄원, 자알 다녀오겠습니다 ^o^  (0) 2011.11.16
단연(斷緣)  (0) 2011.11.16
소쇄원 - 4. 청혼  (0) 2011.11.16
소쇄원 - 3. 만남  (0) 201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