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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단연(斷緣)

by 소금눈물 2011. 11. 16.

단연(斷緣)

06/05/2005 10:22 pm공개조회수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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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연했습니다.
힘겨운 노력도, 감히 체념이라고 할 것도 아니라 했습니다.
나으리의 배필로 난희아씨만한 이가 없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두 사람이 짝이 될 것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아씨라면 일생 외롭고 추웠던 나으리의 마음을 덥혀 주고, 그 앞길에도 더할나위없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십 오년을 바라보고 따라온 나으리, 남들에게는 얼마나 당당하고 단정한 이일지 몰라도 자신은 나으리의 그 외로움과 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나으리를 오래 사모해온 아씨가 드디어 나으리와 혼인을 한다는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하는 마음이, 그 안간힘은 거짓이었다 합니다.
제 목숨보다 소중했던 그 마음이, 다만 보은이라고, 아니 제 순명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리 마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라면, 무엇이라 할까요.
생각조차 죄가 될 그 무서운 마음을 달리 어찌 그렸겠습니까.
허나, 속인 마음을 돌이질하며 터지는 이 울음을, 이 절망을 어찌할까요.
어찌할까요 나는....




이제는 얼굴을 마주 대할 수가 없는데, 차라리 아니 뵙고 싶었을 옥이...



몸은 어떠냐...?

거동할만 합니다...



아직 상처가 깊은 데 더 아픈 상심까지 얻었을 옥이가, 나으리는 괴로우십니다.
하지만, 품고만 살았던 그 한마디를 오늘은 기어이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내가...너를... 생각하는 마음은 ... 아가씨에게 들은... 그대로다....

이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나으리~!



어찌.... 나를... 붙들지 않느냐....



그,그리 말씀 마십시오... 나으리께서는 제게 피붙이 같은 분이십니다...

나으리, 아니됩니다. 그리 말씀하시 마옵소서. 차마도 해서는 아니될 말씀이고 마음입니다.



넌 항상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너를 속이고 있구나.
네가 천인의 신분이 아니었더라도 나를 혈육처럼 느낀다고만 하겠느냐?
난, 네 부모도 아니고 또한 오라비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를 아끼는 사내일 뿐이다.


나으리!
아버님의 유지를 어찌 잊으신 게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네가 마음을 속이지 않았다면...




속인 마음을 짐작하신 분이, 어찌 이러십니까.
마음을 속이지 않았다면 이년이 나으리의 옆에 있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이 마음이 죄라 누가 말 하지 않았지만, 세상의 무서운 법도 앞에 나으리의 이름은 무엇이 되고 이년의 앞날은 나으리 옆에 또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나으리의 마음 또한 이년이 짐작을 하는데, 이 마음을 어찌 보이지 않았느냐 책하십니까.

말하지 마시어요.
그 말씀을 어찌 감당하라고 이러십니까.
사지가 난자당하던 그 밤의 고통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더는 말씀하지 마시어요.



이제 ...더 이상은....



더 이상은.... 날 위해 살지 마라.... 난... 아가씨와 정혼할 것이다.....





감축드립니다...




기어이....
마음에 없는 , 차마 스스로 뱉고도 끔찍한 말씀이었소.
무표정하게 외면하는 나으리의 절망...





옥이의 고통이 나으리의 절망보다 더 크게 울렸던 유일무이한 순간이었소.
옥이가 나으리를 구하려다 치명상을 입고 불임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나으리는 모르오.
어쩌면, 이전처럼 그 마음을 품고 함께 걷지는 못해도, 또 포청에서 함께 일을 하지 못한다 해도 옥이의 목숨은 살렸다는, 자신은 다른 여인의 지아비가 되어 살아가면서 죽음처럼 캄캄한 날들이 된다 해도 그래도 옥이가 어딘가에 안전하게 살아가리라는 것이 나으리께는 그나마의 위안이 되었을 게요.

아니 어쩌면, 당신을 위해서 아낌없이 목숨을 던지는 저 아이를 보면서 나으리는 흔들렸을 지도 모르오.
사주전 수사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역모와도 관련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데 저 아이는 이 후에도 틀림없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덤빌 것이고 종내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오.
게다가.... 이제 저 아이의 마음 속에는 다른 사내의 그림자 또한 스며들어버렸소.
어쩌면 여기쯤에서 놓아주는 것이, 이렇게 인연을 맺고 마는 것이 저 아이를 위해서 다행이라고, 그 매듭을 당신이 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을 게요.

허나 옥이이겐 당치않은 일이오.
말마따나, 오라비이고 아비처럼 유일하게 바라보고 살아온 피붙이 같은 정도 정이지만, 이 사람 옆에 있기 위해서는 그런 변명을 가져야만 했던 그 "사랑"이었소.
드러내는 순간 잃어야 하기에 감출 수 밖에 없는, 감추기 위해서 다른 마음이 필요했던 그 정이었소.


부성애라고 했소?
다소방에 소인이 발을 디뎌놓게 된 계기가 된 단초구려.
코웃음이 나오.
그렇게 보아야만, 아니 스스로의 심중에도 차마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그렇게 주장해야만 그나마 위안이 되고 변명꺼리가 되는 그 논리였소?
불쌍하오. 그 가난함에 차라리 연민이 솟구치오.

아니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듣지 않았던 가요.
나으리의 앞길에 목을 바치겠노라고, 나으리의 그 앞날을 지키기 위해서 사노라고.
그 일을 할 때만 유일하게 사는 의미를 갖노라던...
이렇게 뜨겁고 애달픈 고백을, 저이들은 수없이 속삭이고 새기며 살아온 연인들이었소.

내 아무리 한 남자의 하늘을 훔친 그 마음에 몰입된 인간이지만, 인간의 상식과 연민을 바탕으로 둔 마음이라오.
옥이를 더는 가련하게 마오.
옥이의 저 눈물을, 저 찢어지는 가슴을 그 더럽고 가난한 말로 욕되게 마오.
옥이가 제 피붙이의 혼인에 저토록 고통스러워하는 상피의 계집이라고까지 해야 마음이 정녕 편한 그대는 과연 어떤 심성을 가진 이요?
그대 다모를 보긴 했소?
어디서 삼류 주모를 보고 와서 가엾은 저 아이의 단장을 다시 짓밟는게요?






나으리, 저 아이의 숨막히는 오열을 듣지 마시오.
이제 살아도 산 것이 아닐, 허깨비 같은 그 나날을 어찌 견디시려오.

옥아, 나으리의 눈물을 너는 끝내 알지 말거라.
달빛처럼 적셔오던 그 정을 닫고, 이제 맨 발로 서서 견뎌야 할 그 생의 밤들.
가시가 되어 찌를 그 눈물을 너는 알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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