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이의 무녀 시빌레는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 이유로, 천년의 수명을 약속받았으나 젊음은 받지 못해서 쪼그라진 노파로 살다가 나중에는 그 예언의 목소리만 남았다는 신화 속의 여인이다.
올림포스 신들 중에서 제우스 다음의 권력과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 수많은 염문을 뿌렸던 아폴론의 구애를 거부하다니 대단한 여인이었다.
모름지기 무녀란 죽음과 생, 신과 인간의 다리 역할 하는 이가 아니었던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의 허망한 욕망을 건너다 볼 줄 알았던 그가 천년의 생애를 꿈꾸었다니.
신의 마음을 짐작하던 무녀에겐 인간의 오욕칠정의 백 년이 부족했던 걸까.
그 壽를 함께 누릴 젊음을 부탁하는 것을 깜빡 잊어버려 시빌레의 천년의 삶은 차라리 죽음을 갈구하는 형벌이 되어버렸다.
늙어 쪼그라져 새장 속에 갖힌 시빌레가 죽고 싶어, 죽고싶어... 웅얼거리는 꼴을 보며 아폴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랑을 얻지 못한 분노라고 하기엔 그도 참 잔인하다.
미켈란젤로의 <쿠마이의 무녀>는 늙고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으나 그 몸집은 기골이 장대한 장년의 사내다. 떡 벌어진 어깨에 근육이 꿈틀거리는 팔, 단단히 힘을 준 발은 묘하게 부조화를 이룬다.
노년의 시벨레. 아름다움과 총기로 美神 아폴론을 흔들었던 젊은날은 흔적이 없다. 남정네의 몸처럼 벌어지고 단단해진 체구에, 미소가 사라진 얼굴은 신경질적으로까지 보인다.
인생에 잠깐 주어진 짧은 햇살같은 젊음의 덧없음. 신의 계획을 인간의 지혜를 짐작하는 이성만 아직도 새파랗다. 그래서 저 노파의 얼굴로도 책을 열고 있는 손짓은 완강한 힘을 갖고 있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미켈란젤로는.
무녀의 어깨너머에서 책을 건너다보는 천사들 조차, 근육의 발달이 우리가 익히 보아온 아기 천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소문이 다시 떠오른다.
무녀가 들여다보는 예언서는 백지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예언서>.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마음으로는 신의 뜻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슬픈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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