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일, 거실장을 둘러엎어놓고 청소를 하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날이 이렇게나 좋은데 무슨 청소를 하느냐고 ㅡ.ㅡ;
결국, 끄집어낸 살림들을 고스란히 제 자리에 부어넣고 부랴부랴 나선 계룡산 나들이.

둥글둥글한 산이마가 정겹다.
아..정말 가을은 저 홀로 그렇게 푸르게 깊었다.

저녁햇살이 엷게 번지는 오후.
공작이 곱다.

생각해보니 동학사를 언제 왔던가 싶다.
계룡산이야 가끔 들렀지만, 학교 졸업하고 동학사는 손 꼽을 기억이다.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사실 더 덜 찾게 되는 것 같다.
어느 해 늦가을, 낙엽이 다 져버린 스산한 저녁무렵
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이 산 오솔길에 서 있던 기억이 있다.
그 날 나는 기형도의 시집을 샀다.
늦은 가을비, 기형도, 우울하고 외로왔던 스물 몇의 내가 여기 어느날 있었다.



참 곱다.. 감탄하면서 보다가 다알리아 꽃 송이 사이로 간들간들 날개를 젓는 호랑나비를 만났다.
가을볕은 짧은데 저렇게 노닐다가 어디로 갈까나.
정말로 나비가 나를 본 생의 꿈을 꾸는 건가, 내가 나비를 보는 꿈을 꾸는 건가...


동학사의 시작은 신라 성덕왕23년, 서기 72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래로 수많은 전란을 겪으며 소실을 거듭하여 실제로 우리가 보는 동학사의 부속 전각이나 암자는 거의 새 건물이고 그나마 다른 대찰처럼 우람하지도 않다.
그런데 비구니 스님의 절이라서 그런지 아담하고 구석구석 이쁘고 아기자기하다.
꽃도 참 많았다.
( 꽃 사진 거의 대부분을 마구잡이로 찍은 수전인(手顫人) 탓에 차마 올리지를 못한다 ㅠㅠ)

미타암.

마침, 사찰장식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고로 단청이나 장식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고개가 꺾어져라고 열심히 들여다보는 공포장식들.
오기 전에 마침, 동학사의 사군자문살이 아름답고 독특하다고 한 대목이 생각나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
대흥사나 다른 큰 절에서 웅대하게 보였던 용두의 장식은 보이지 않고 자못 비단 치맛자락 처럼 요요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처마선이다.

미타암의 법당 꽃문살.

불교에서 용은 불법을 수호하고 극락세계로 가는 반야용선의 선수를 용두로 표현한다.
법당천정은 부처님의 설법을 하실 때에 꽃 비가 흩날렸다는 일화를 표현하기 위해 부처님의 위로 꽃을 가득히 그려 마치 그 꽃비가 법당에 앉은 불자들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한다.
법당을 기웃거리며 고개를 쑥 빼고 들여다보는 내게, 스님께서 들어와서 편히 보라고 하신다.
감사감사~(__)
기독교도인고로 불교의 교리나 상징에 대해서 알지 못하나 관심이 많아서 설명 좀 부탁드리고 싶다 했더니 스님은 엷게 웃으시며 사실 절간의 구조물 장식에 대해선 딱히 깊이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양해를 구하고 이것저것 되는 대로 찍었다.
책에서 보았던 가릉빈가나, 주악인물상, 비천상이 밑에서 올려다 보는 것으로는 확실하게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아마도, 내 무지의 덕택이겠지만 -_-;
기회가 되면 탱화에 대해서도, 그림속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배우는 길이 생기면 좋겠다.

치맛선을 이리 보니 활짝 펼친 것 같다.
끝 선을 조금만 지그시 누르고 담백해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늘로 너무 많이 차올라 같 것 같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뭘 알고 하는 소리겠냐만 -_-;)

미타암 마당에 봉숭아가 가득히 피었다.

이렇게 이쁜 애의 이름을 모르다니.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면 존재도 인정받지 못하는 법이어늘 ㅠㅠ 미안코나, 미안코나..ㅠㅠ
벌써 이렇게나 스크롤의 압박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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