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풍죽도 그림 이야기

25. 길 위에 하늘

by 소금눈물 2011. 11. 11.

 

 

 

아주 좋아하는 '제주의 작가' 강요배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프고 슬픈 역사 중의 하나인 4.3을 형상화한 작가로 유명하지요.
4.3 뿐 아니라 지금 제주의 아름답고 웅장한 풍광들, 그 땅이 스민 제주사람들의 애환과 긍지를 화폭에 담고 계신 분입니다.

강요배를 말하자면 이 그림을 빼놓을 수가 없겠네요.

 

 




마파람

느껴지시나요?
화면의 대부분을 압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먹구름이 몰아쳐가는 검은 하늘.
구름들 사이로 잠깐 드러나는 하늘 아래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땅의 불안한 기운. 무슨 일인가 두려운 일이 바다로부터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지요.

 

 



서천

불안하고 고통스런 예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끔찍했던 긴 밤이 지나가고 점차로 밝아오는 하늘.
서천, 서역은 우리 문화에서 일쑤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라 이 그림을 보면 바로 그날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입니다.
강요배를 이 그림으로 처음 만났던 때가. 그날 이후 가장 좋아하는 우리 화가가 되었네요.

굵고 거친 붓질, 세밀한 묘사를 일체 생략해버리고 바로 그 본질로 치고 들어가는 힘과 분노의 도도한 뿌리, 이런 일을 겪어낸 제주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외치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화폭 밖으로 뿜어져나옵니다.

 

 



호박꽃

이 그림도 아주 좋아합니다.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다만 그 꽃의 꽃일 뿐 아니라 이 땅의 담벼락 아래마다 심어지고 또 피어 열매를 맺어 우리를 먹여살린 고마운 꽃. 별처럼 환하지 않으나 별처럼 고운 호박꽃.
<호박꽃>을 볼 때마다 강요배 그림의 밑바탕이 이런 힘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서양화인데도 강요배의 그림들은 한국화, 그 중에서 문인화 같은 느낌을 벗어낼 수가 없습니다. 문과 무, 현실과 이상을 따로 두지 않았던 그 강인하고 뿌리깊은 우리 조상들의 자부심, 채색유화를 보면서도 이정의 풍죽도, 긴 세월을 두고 이어진 그 문인화의 줄기를 생각합니다.



 

길 위에 하늘

새벽일까요 밤일까요?
휘영청 밝은 달은 먹장구름에 가려지려 합니다.
달빛이 가려지지 않았더라면 아름다운 달밤이었을 토담길도 먹장구름에 가려졌습니다.
하늘과 길을 잇는 것은 검은 구름 사이로 흔들리는 나뭇가지입니다.

숲은 저 길을 지나 먼 곳에 음험한 짐승처럼 서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검은 달밤, 누군가 어둔 길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창이에겐 그 길이 아주 멀어 보입니다.

'그룹명 > 풍죽도 그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7. 풍천  (0) 2011.11.11
26. 소나무  (0) 2011.11.11
24. 호취박토도  (0) 2011.11.11
23.붕새  (0) 2011.11.11
한정품국도  (0) 201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