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호랑이, 개와 더불어 가장 많이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동물이 토끼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매는 액막이를 하는 의미에서도 많이 그려졌지요.
꾀가 많고 재치가 있지만 간혹 제 꾀에 잘 넘어가는 토끼. 그래서 민중에서는 토끼를 귀엽고 발랄한 동물이 아니라 교활한 동물로 의인화가 되어 토끼가 당하는 수난을 통쾌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릅니다.
새해가 되면 임금이 조정의 근신(近臣)들에게 선물로 그림을 내려 그 기름을 두고 서로 화제를 나누며 그 그림에 담긴 뜻을 생각하고 마음을 닦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매 그림도 여러 번 세화로 내려졌는데 토실토실 살을 찌우고 땅굴을 뒤지며 교활하게 살던 토끼가 용맹한 매에게 단박에 사로잡히는 장면이지요. 소탕되는 교활한 토끼와 날렵하고 용맹한 매의 활약을 보며 긴 역사의 구비구비 바르지 못한 시대, 권력에 기생해서 제 배를 찌우는 무리들을 단숨에 박멸하는 매를 보며 위로를 받고 그 기상을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토끼가 일시에 매에 사로잡히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림 위로 날아오르는 새들의 바쁜 날갯짓이 숲을 푸드덕 깨우는 듯 합니다. 날카로운 저 발톱에 꼼짝없이 잡혀버렸으니 토끼는 끝이 났군요.
교활하다 하나 그 교활함은 자기를 지킬 아무런 무기도 갖지 못한 토끼가 자신을 지킬 유일한 길이었으니 꾀가 많다 하여 토끼를 미워할수만은 없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옳게, 제대로만 살아서는 도무지 입신양명하여 제 뜻을 펼칠 수 없는 막막한 세상에서 삿된 길로 가며 얇팍하게 술수를 써서 권력을 쥔 이들을 미워하다보니 그림의 매에게 자신을 투사하여 위로를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그림과 아주 비슷한, 같은 화가의 그림으로 황취박토도가 있습니다.
놀랍도록 비슷하지요?
매의 머리 털이 후르르 일어서고 움켜쥔 발이 더 완강하고 그림 위로 날아올라 짖는 새가 한 쌍이라는 게 다를 뿐 구도는 거의 똑같습니다. 아마도 시간순으로 보자면 황취박토도가 좀 더 이른 시간, 바로 뒤의 모습이 호취박토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사정의 매그림은 매우 유명하였답니다. 매끄러운 화법이라기보다는 거침없는 준법과 호방한 필체가 그 멋이라 심사정의 그림을 탐내는 이들은 그의 앞에서 매가 너무 사납게 그려졌다고 흠을 잡아서 그림값을 떨어뜨려서 사곤 했다네요. ^^;
<풍죽도>에서는 아직은 모릅니다.
저 매에게 잡힌 토끼가 누구인지, 매는 또 누구인지.
저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은 토끼는 또 무슨 술수를 부려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그래도 이 그림의 주인공은 토끼보다는 매지요.
날카로운 매의 활약... 글쎄 기대는 해보는데 도무지 우리 창이 아직 너무 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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