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완결소설- 풍죽도

25. 길 위에 하늘

by 소금눈물 2011. 11. 11.

 

08/30/2011 06:58 pm공개조회수 0 0



 



"병방께서?"


낮은 목소리였다. 은밀히 혼자서 오라는 말이구나.


병방의 막사로 들어서니 병방은 철갑을 막 벗고 있었다.

뜻밖에도 막사 안에는 동보가 먼저 와서 철갑을 받아 안다가 들어서는 나를 보고 눈인사를 하였다.


병방의 오른손 소맷부리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다치셨습니까?"


병방은 이마를 찌푸렸다.


"멍청한 내금위 한 놈이 화살을 놓치고 내 팔에 쏘았다. 하마터면 전하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장용위 얼굴에 흙칠을 할 뻔 하였다."


"어찌 그런 실수를!"


"궁 안에만 있던 놈이라 내 얼굴을 몰라서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구나. 매복훈련 중이라 갑옷을 똑같이 입었더니 더더욱 몰라봤다 하고."


피딱지가 엉겨 붙어 옷을 잘라내야 했다. 살덩이가 찢겨나가는데도 병방은 이마를 찡그렸을 뿐 비명소리도 내지 않았다.


"별 일 아니다. 의원을 부르면 주위가 시끄러워질까 하여 서동보가 곧잘 본다기에 불렀다.

오늘 환궁을 하실 터인데 그 때까지만 탈이 없기를 바랬는데."


상처를 들여다보던 동보가 병방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심상찮은 눈빛이었다.


"화살촉이 뼈를 건드렸습니다. 이대로 팔을 쓰신다면 금이 간 뼈가 부서질 것입니다. 사나흘은 족히 팔을 들고 내리지도 말고 쉬셔야 합니다."


"천치 같은 놈!"


병방이 욕설을 내뱉었다.

사나흘이면 거둥도 다 끝이 난다. 장용위 대장이 내금위에게 부상을 입어 전하를 보필하지 못하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전하의 체면이 구겨지게 되었다. 군인된 자의 가장 으뜸이 호위무관 아닌가. 그 내금위에게 전하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자랑한 장용위 대장이 다쳤다. 어쨌든 전하의 적들에게 좋은 입말이 되게 생겼다. 절대 부상을 드러내선 아니 된다. 그렇다고 팔을 쓸 수도 없다.


"팔이 부서진다 해도, 다시 칼을 들 수 없다 해도 지금 쉴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다행히 훈련은 다 마쳤으니 거둥 끝까지 내가 맡은 책임은 다 할 것이다."


"하오나 들고 계신 검의 무게만 하여도・・・・・・"


동보가 낯을 흐리자 병방이 낯을 찌푸렸다.


"됐다. 너는 주위에 이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예."


"어차피 불측한 마음을 품은 무리라 하여도 전하의 옆을 누가 감히 노리겠느냐. 문제는・・・・・・ 혹시라도 있을 매복이다. 오늘 훈련을 하다보니 화성이야 손바닥 안이나 다름없으니 상관없다만 지지대 넘어서까지는 먼저 살필 수 없다. 이곳은 내금위들이 맡을 곳이고. 오늘 이 지경을 당하고 보니 저들도 내가 믿지 못하게 되었다. 하여 김창!"


"예!"


"네가 먼저 선기대 열두 명을 데리고 먼저 출발하라. 인적이 드물고 외진 산기슭이나 계곡을 각별히 살피고 다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마라. 너는 진법에 능하고 산천을 보는 눈이 있으니 네 몸이 전하의 옥체라 생각하고 네가 당할 위험이 있는 요소는 반드시 살피고 만에 하나 매복점이라면 절대로 놓치지 말고 확인하라. 날이 밝기 전에 먼저 출발하여야 한다."


읍을 하고 막사를 나왔다.

앞서 걸으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동보가 문득 발을 멈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괴이하다."


"무엇이 말입니까?"


"갑옷 말이다. 벗기다보니 엄심(갑옷 중에서 심장이나 낭심을 보호하는 덧대는 쇠)을 잇는 가죽 끈이 끊어져 있었다."


"갑옷의 철편을 잇는 가죽 끈이 상하는 일은 쉽게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훈련이 혹독하였으니 헤어질 만도 하지요."


"철편을 잇는 가죽 끈이 무엇인 줄 아느냐? 도살한 소나 돼지가죽으로 만든 끈이 아니다. 야생에서 거칠게 자란 짐승의 생저니 이 가죽은 가축의 가죽보다 비교도 안 되게 질기고 튼튼하다. 녹피(사슴가죽)를 증기로 여러 번 찌고 묵혀서 다시 여러 번 잘 겹치면 철갑보다 훨씬 튼튼하고 가벼워 권문세가에서는 철갑보다 오히려 녹피갑주를 선호하기도 하지.


훈련 중에 철갑이 상하는 일이야 부지기수이지만 지금이 어느 때이냐? 게다가 장용영 대장의 철갑이 그리 소홀히 다뤄지겠느냐? 상감께서 함께 하시는 행행 호위인데 날마다 기름칠을 하며 살피는 이가 필히 있을 터인즉.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무엇입니까?"


"왜 하필 엄심이냐는 것이지. 갑주가 상하면 금세 눈에 뜨일 갑(상반신을 보호하는 갑옷)이나 갑상(다리 및 하반신을 보호하는 갑옷. 갑주는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인 주(胄)와 옆구리를 보호하는 호액, 심장과 낭심을 보호하는 엄심, 그리고 갑과 갑상으로 이루어진다)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그곳은 바로 국소가 아니냐?"


"그러면 형님은 누군가가・・・・・・"


"설마 장용위 대장을 노리고 있는 자가 감히 있을까. 허나 어젯밤 저들의 행투도 그렇고 능침에서 과하게 전하께서 애통해하시고 통분해하셨으니 그것을 본 무리들이 간담이 서늘하였을 것 아니냐. 어쩐지 일이 교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동보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문득 주위를 돌아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중얼거렸다.


"아마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병방을 전하의 곁에서 떼어놓고 장용위의 주목을 분산시키려는 느낌이 든다. 실수라니 내금위를 맘대로 목을 날릴 수도 없고・・・・・・ 실수가 아니었다면?"


식은땀이 흘렀다.


"저들이 움직이는군요!"


"선기대에 합류하고 싶으나 병방이 부상을 당하셨으니 내가 옆을 지켜야겠다. 기형과 함께 가거라."


저녁이 내리는 막사 위로 구름이 낮게 드리워졌다.


이것은 척후 훈련이 아닐 수도 있다.

몸이 후드드 떨려왔다.



* 그림 강요배

'그룹명 > 완결소설- 풍죽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7. 풍천  (0) 2011.11.11
26. 소나무  (0) 2011.11.11
24. 호취박토도  (0) 2011.11.11
23. 붕새  (0) 2011.11.11
22. 한정품국도  (0) 201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