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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연인의 마을

나는 나쁜 놈입니다.

by 소금눈물 2011. 11. 10.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자꾸 보여주게 됩니다.
내가 깡패라는 것, 티비에 나오는 조폭들 개싸움이 나같은 인간에게는 일상이기도 하다는 것,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옆에 두고 싶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
그런 부류가 바로 나라는 것...

무엇보다 도무지 그녀를 봐라봐선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
어쩌면 가끔 나를 보고 있는 그녀의 눈길이 무얼 말하는 걸까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절대 아닐 거라는 건 알기에, 그건 정말 웃기는 착각이라는 건 나도 알기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도 급한 마음이 들면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보고 그녀를 찾게 되는 건 무슨 마음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자다말고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오른 유진이를 보고 당황해서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래선 정말 안되는 거였는데요.
내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라는 건 보여줘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하지만, 어쩌면 우리 둘 다에게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처구니없이 흔들려버린 나를 다잡기 위해서라도, 정말 이제는 정신차려야 하는 나를 위해서라도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내가 무슨 미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라도요.

그녀에게 잔인한 일이었을까요.
이런 생각조차 어처구니없는 소리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감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요.
유진이를 두고...

착한 그녀, 자다깨서 툴툴대긴 했지만 유진이 아프다는 말에 두말할 것 없이 물건을 챙겨서 건너와주었습니다.
이런저런 평소의 증상을 묻는 그녀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유진에 대해서라면 정말 아는게 없습니다.
무얼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잘 먹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 조차 몰랐으니까요.

아는 게 뭐예요 사람이 이 지경인데?

한심해보였겠지요.
다행히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응급실로 데려갈 걸 그랬습니다.
묵묵히 얼음행주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내가 참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나쁜 놈이 되어버렸습니다.
밤새 유진을 간호하다 잠이 들어버린 그녀를 보면서 왜 저 사람이아픈 유진이보다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할까 나도 알 수 없었습니다.

돌아보면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 금방이라도 울 듯한 그녀를 남겨두고 차를 출발시켰었습니다.
나를 보고 무슨 말인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다가 내 옆을 보며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음이 답답해서 자꾸 주먹만 쥐었다폈다 하던 그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애들의 보고를 듣고 있다가도 문득 당신 생각이 나노라고,
이 동네를 들어올 때마다 당신과 마주칠까 싶어서 자꾸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다고,
이제는 거리의 병원 간판이 아무때나 불쑥불쑥 눈속으로 뛰어들어온다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세연이 무슨 짓을 하고 살던 이제껏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 사람 옆에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타버리는 것만 같았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몸을 더듬는 걸 보는 순간 불이라도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자격이 없지요.
무식하고 되는대로 살아온 깡패, 양아치입니다.
거기다가... 짧지않은 세월을 나만 보고 살아온 유진이 이제 내 아이까지 가졌다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녀가 알려준 소식인데
어쩔 수가 없지요.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참 개자식이지만, 유진이 들으면 기가 막힐 말이겠지만 그게 사실인걸요...

내가 해줄 것은 오직...
지쳐 잠이 든 그녀에게 담요를 하나 얹어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이걸로 덥혀지진 않겠지만 추위를 잘 타는 그녀에게 보이지도 못할 이 마음을 이렇게 덮어주는 것 밖에 나는 아무 할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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