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치료가 다 끝나가던 날이었다.
평화로운 오후, 모처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옆집 여자...
유진...이라는 여자... 두목의 애인.
나를 보고 굳어버린 그녀 앞에서 나도 얼어버렸다.
말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었겠지만 어쩐지 나는 무언가를 다 들켜버린 것 같았다.
몰래 무언가를 저지르다 주인에게 발각된 것처럼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다.
그 사람이 연락을 했으니 왔겠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나를 반난 그녀의 눈빛은 어이없음을 지나 거침없이 나를 비난하는 것 처럼 보였다.
당신이 왜 여기 있냐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
그건 아니었는데...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갑자기 가슴이 조여들까.
내가... 정말 무슨 죄를 저지른 거야?
아니잖아... 아닌데...
내 손님도 아니었는데 주제넘게 차를 준비한 것부터가 웃기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 있었다.
불길한 예감처럼, 아니 이 말이 좀 안 맞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어쩐지 불길한 예감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가슴으로 찬바람이 휘익 지나간다.
뭐지 이게?
가는 거에요?
그러려는 거에요 지금?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나에게 설명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나는 물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아니 다른 말이 아니라 그래도 그게...
정말 ...인사도 없이...
고맙다고, 잘 있으라는 말도 없이...
가 버렸어...
툴툴대고 무뚝뚝하긴 해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가보다고 생각했는데...
어젯밤에 했던 말은 그래도 나를 조금은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자기 마음을 보여주는가보다고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는데...
물론 나도 그다지 잘 해준 건 없어.
그래도 내딴에는 열심히 치료해주었다고.
처음으로 연월차 다 땡겨서 휴가도 받고 ... 누구땜에 그랬는데...
어쩜 인사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저희 지금 서울로 돌아갑니다.
네. 잘 됐네요.
사장님께서도 각별히 고맙다는 말씀 전하라 하셨습니다.
두목은 왕싸가지여도 아랫사람은 안 그런 모양이지.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죽어라 치료해주었더니 말 한마디 없이 휙 가버리고.
내가 인사 받고 싶은 사람은 아저씨가 아니네요.
기가 막혀 정말!
애인 왔다고 쏠랑 가 버릴 걸 여태 어떻게 참았대?
전화하래도 대꾸도 않고 내 말 싹 무시하더니?
그렇게 보고 싶고 애닳을 걸 뭐하러 여기서 개겼대?
저는 입 없어?
고맙다는 말 직접 하면 입 안에 가시라도 돋혀?
내가 처음부터 알아봤어. 반말 찍찍하면서 얘쟤 하더니.
길 잃은 어린양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정말.
너 처럼인사성도 없고기본적인 개념도 탑재 안된 넘은 누가 버려서가 아니라 네 발로 길을 차버린 거야.
나쁜 자식!!
아직 실도 안 뽑았는데...
에잇! 가다가 확 염증이나 나 버려라.
둘 다 똑같아.
사람을 뭘로 보고 바보로 만들어.
뭐가 그렇게들 잘났어?
이쁘면 다야?
그래 나도 알아.
뭐 신도에서 주구장창 살 것도 아니고 오래 있어봤자 우리집에 좋을 것도 하나도 없는 사람이야.
느닷없이 떠났다고 서운하거나 섭섭해서가 아냐.
그래도... 사람이 이렇게 가는 건 도리가 아니잖아.
나는 지금 그게 화가 난 거야.
그게 마음이 아프, 아니 불편한 거야.
나쁜 자식!
잘난 척만 대따 하고! 성질도 더럽고! 겁나 겁쟁이고!!
나쁜 놈. 바보!!
가다가 확 펑크나 나버려라 그 넘의 차!!
그룹명/연인의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