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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완결소설- 늦은 비

20.

by 소금눈물 2011. 11. 10.

12/23/2003 10:28 pm공개조회수 0 4


"잠이 들었습니다"
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붕대로 감은 꼬마가 휠체어를 타고 무심하게 복도를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병원 생활에 적응을 잘했다.
오래 지나다보면 어른들은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데, 아이들은 그 험악한 틈바구니에서 잘도 자기의 자리를 찾고 친구들을 만들고 툭하면 스테이션까지 나와 재롱을 부렸다.

아이가 사라지는것을 망연히 바라보던 창이 고개를 돌렸다.
"시간..되십니까"

나는 잠자코 창의 뒤를 따랐다.

병원 후문쪽의 로비는 조용했다. 이따금 병원을 빠져나가는 차량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사라지고, 그리고 또 침묵이었다. 병원 뒤뜰의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기우뚱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영이는 ....아주 어렸을때 저희 집에 왔습니다"
힘겹게 창이 입을 떼었다.

나는 잠자코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현관 처마를 바라보았다.

"제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던 때였던 것 같아요.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그 해 봄에 전국체전 일로 광주에 출장을 가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음 날이면 돌아오시겠다고 했는데 거의 열흘이나 되어서야 돌아오셨습니다. 아기를 안고요"


열흘간을 어찌 보냈는지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품 안에서 꺼낸 계집아이를 보고 어머니는 더 놀랐다. 땀에 전 아버지의 품속에서, 그러나 아기는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볼이 붉고 목덜미가 눈처럼 흰 아기였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의심했던 어머니도 너무나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넋을 뺏겼다. 창이 외동이라 은근히 외로와 하던 부모였다.

그 아기가 어디서 났는지 창은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창에게 외가쪽에서 데려온 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가는 강원도였다.
난데없는 업동이를 두고 말좋아하는 친척들이 모여들었지만 창의 부모는 단호했다. 결국 아기는 같이 살게 되었다. 정말 귀엽고 재롱이 많은 아기였다.

그해 봄, 출장지에서 아버지는 무슨 일을 겪었던가. 창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부쩍 말수가 적어진 아버지는 예전만큼 신문을 보지 않았다. 텔레비전 뉴스시간에도 공연히 화를 버럭 내며 꺼버리는 게 다반사였다.

남들과 술자리를 자주하던 사람도 아니긴했다. 하지만 영이 들어오고부터 거의라고 할만큼 아버지는 직장외에는 두문불출하면서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았다.

"창아...저 아이를 잘 지켜줘야 한다. 네 동생처럼, 네 몸처럼 아껴주어라"
창은 침통하게 이르던 아버지의 말씀을 내내 기억했다.

아니 그 말이 아니더래도 이상하게 영은 창을 잘 따랐다. 잠투정을 하다가도 어린 창이 다독거리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장아장 발자국을 뗄 무렵부터는 내내 창의 뒤를 쫓아다녔다.

창도 그랬다.
한창 제 것을 욕심낼 나이에도 영이가 숙제장을 찢거나 물을 책에 엎어도 화를 내지 않았다. 크레파스가 몇 개 비어 화를 내다가도 영이 부러뜨렸다면 입을 닫았다.

나이차가 적지 않았지만 창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영을 먼저 찾았고, 영이도 창이 학교에 돌아올 시간만 기다렸다.

영이의 성은 조가였다.
이름은 아버지가 지었지만 성은 창의 것이 아니었다. 영이 커가면서 창의 아버지는 외삼촌으로 불리웠다.데려온 아기였지만 자라는데 차별을 두는 부모는 전혀 아니었다.
단지 성이 달랐을뿐 입히는 옷이나 먹일 간식이나, 여행을 갈때도 둘은 언제나 같이였다.

영이 자라면서 아버지는 부쩍 말수가 줄어들고 봄이면 꼭 지리산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돌아오면서는 광주에를 들러 점심이나 저녁을 먹여서 돌아오곤 했다.

영은 귀엽고 발랄한 딸이었고, 창은 믿음직하고 넉넉한 아들이었다.
부모는 자라나는 어린자식들을 보며 시름을 잊었다.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이었다.


영이의 오빠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은 영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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