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희고 웃음이 맑은 여자.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었다.
귀 밑으로 솜털이 살짝 지나갈 만큼 피부가 고왔다.
자주빛 스웨터 위로 곧게 뻗은 하얀 목선이 단정했다.
여자는 물웅덩이를 살짝 피해서 깡총 뛰며 또 까르르 웃었다.
비누방울이 튀어오르는 것처럼 경쾌한 웃음이었다.
팔랑~ 한여름 버들가지 같은 머리채가 물결을 이루고
말수가 적어보이는 남자는 여자의 웃음소리를 따라 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이의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신산한 세상의 칼바람을 맞아보지 않은 얼굴로
여자는 남자를 돌아보고 웃고 남자는 두어 걸음 뒤에서 조용히 미소지으며 따라 걸었다.
어떤 꽃이 그 미소보다 고왔던가.
나는 계단을 다 올라가서도 자리에 붙어버린 듯 그들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보지 말아야 할 남의 깊은 사연을 보아버린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 한 쪽으로 빠르게 통증이 지나갔다.
얼음칼로 서걱 베인 것만 같았다.
왜 그랬을까....
처음 보는 이들이었는데.
세상에서 보지 못한 웃음을 가진 그들
그런데도 낯이 익고 그 낯익은 기분은 어쩐지 서러운 어떤 빛깔을 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낯선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두 사람은 대웅전 뒤로 사라졌다.
그들이 지난 뒤로 소리없이 이른 바람이 지나갔다.
봄바람이었을까...
아니, 아니 내 얼굴을 살짝 할퀴고 간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날...
어디서쯤 동료들과 합류했던가
그것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쌍계사 근처 어디 모텔에서 만났을 것이다.
무엇을 했던가.
의례적인 소개가 있고
신입들의 인사가 있었고
교실 내내 전해져 내려오는 선배들의 전설이 떠들썩하게 이어졌고
또 술자리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기억에 없다.
저녁을 먹고 다들 자리를 펴는 시간이었다.
몇은 술판을 벌였고 목소리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쌍계사로 올라갔다.
눈부신 달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