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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완결소설- 늦은 비

4.

by 소금눈물 2011. 11. 10.

12/05/2003 05:26 pm공개조회수 0 3


첫봄물이 오르는 들판은 아직 매운 바람이었다.

군데군데 이른 퇴비를 얹어놓은 논도 보였지만 여간 부지런한 농부가 아니라면 아직 들에 나올 생각은 없을 터였다.

뿌연 아침 안개 사이로 버들강아지가 오르는 냇가에는 아지랑이가 피었다.

벚나무는 아직 듬성듬성 망울을 쥔 채였고, 벚꽃대신 지천으로 구름을 만들고 있는 것은 매화였다.
아.. 천지의 그 매화...
꽃이 피어 사태를 이루다 다시 구름을 이룬 그 꽃바다...

아득한 매화구름에 취했던 나는 정신을 차렸다.
어디서 모인다고 했지?
초행길이었던 나는 좁달막한 도로가 영 불편했다.

아직 본격적인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외지 번호판을 단 승용차들이 간간히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꽃이고 뭐고 그저 한나절 잠이나 잤으면 좋을 일이었다.
2년차 주제에 개기지도 못하고 따라나온 신세였다.

쌍계사까지 도착해서도 동료들은 보이지 않았다.
길이 어긋난 걸까?

나는 일단 주차장에 차를 두고 절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 아침 나절의 절은 조용했다.

천천히 올라갈 때였다. 그들을 본 것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아니....여자라고 말하기엔 애띤 소녀의 얼굴이었다.
해맑게 까르르 웃는 웃음이 조용한 경내에 실로폰처럼 울려퍼졌다.
긴 생머리를 하고 자줏빛의 스웨터를 입은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른 봄의 쌀쌀함을 말끔히 가시는 햇살 같았다.

여자의 뒷편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빙긋이 미소를 짓고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웠던 것일까.

여자의 웃음에 남자는 말을 끊고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차마 부신 꽃을 보듯,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둘 사이는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아무도 없는 듯 여자는 햇살처럼 웃고,
남자는 막 핀 꽃을 바람으로부터 안듯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한 절에, 세상은 막막하게 멀었고.
나도 보이지 않고, 오래된 전설을 가진 절도 사라지고....

세상엔 둘 밖에 없는 듯한,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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