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놈바켕이 올랐을 때는 저녁으로 기울고 있었다.
산이 없는 씨엠립. 차를 타고 가도 가도 평원.
해발..이라고 하기가 민망하게 50-60m 남짓한 이 바켕언덕의 사원(프놈은 "산"이라는 뜻이란다)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그렇게 아름답단다. 앙코르 여행의 저녁 코스는 그래서 여기서 맞는 이들이 많단다.
앙코르 유적을 돌아보면서 내내 느낀 것은 그 뛰어난 조형예술감각에 대한 찬탄이었고, 이렇게 찬란한 문명을 가졌던 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5-600 년간을 동남아 일대의 패자(覇子)로 군림하던 크메르제국이, 거듭되는 외침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그 찬란한 수도를 버리고 떠날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백 만이 살았다는 수도, 십 만의 노예가 지었다는 크메르의 유적들.
약탈자에게 그 문명은 속절없이 무너져버렸고 버려진 사원은 밀림 속에 그렇게 묻혀졌다.
그들의 후손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은밀히 전해지는 전설이 되었을 뿐이었다. 이방인의 발길에 다시 한 번 밟히기 전까지.

계단은 높지 않지만 몹시 가팔랐다.
손으로 짚어가며 겨우 올라갔다.

889년 왕이 된 야소바르만 1세가 크메르 초기 유적지인 롤루우스에서 이 근처로 수도를 옮기면서앙코르 일대를 내려다보는 이 곳에 올라 사원을 지었다.
많이 유실되었지만 다른 사원에 비해 힌두사원의 대표적인 건축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구조는 앙코르왓과 비슷하다.
황도대의 12별자리를 의미하는 탑과 그 위에 4개의 탑들, 그리고 지성소인 중앙탑이 있다.
앙코르인들이 음력으로 계산한 한 달의 날수 27의 4배수를 상징한 108기의 탑이 있었다 한다.

앙코르왓에 비해 비교적 초기 유적이지만 이후에 간 룰로오스보다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앙코르왓의 조각만큼 아름답고 섬세하다.
이전에는 지금 보여지는 것과 비교도 안될 만큼 크고 화려한 건물이 많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석조 건축물 보다는 목조 건축물이 훨씬 더 많았을테니까. 하지만 돌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이렇게 훼손되고 망가졌는데 목조건축물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문틀이나 건축물 기단, 몸체의 섬세한 조각을 보며 그 솜씨를 짐작할 뿐이다.

힌두교사원답게 가장 높은 곳에 어김없이 자리한 링감.
이 곳에서 흘러나간 성수가 드넓은 크메르 평원으로 뻗어나갔을 것이다.
지금도 캄보디아에서는 손님이 방문하면 성수를 뿌리며 환영하는 습속이 있단다.

저녁이 내리는 평원을 바라보며.
앙코르왓의 탑들이 잡힐 듯 보인다.

멀리 보이는 시가지.
지평선에는 걸리는 게 아무 것도 없이 드넓은 밀림의 평원이다.

손댈 수 없이 파괴된 유적의 모습이 쓸쓸하다.

물결처럼 밀려오는 외국의 관광객을 바라보며 초롱초롱 눈이 맑은 아이들이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허름한 유니폼을 입은 공무원들은 대바구니를 들고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를 치운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렇지 않게 휴지며 음식 껍질을 버리는 관광객들의 무심한 손에 몹시 화가 난다.

얼굴이 훼손되어버린 부조.
이 높은 곳에 올라와 이렇게 철저하게 망가뜨린 것은 침략자의 복수였을까, 아니면 약탈꾼의 손이었을까.


본디의 모습은 크게 다쳐버렸지만 남은조각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의 높이를 충분히 알겠다.
통통한 엄지와 손바닥으로 이어지는 근육의 실감나는 양감, 바람이 살짝 젖혀올린 치맛자락과 섬세한 주름들. 그리고 문틀을 장식하며 올라간 저 섬세한 조각...

이 놀라운 문화유산은 이렇게 아무렇게나 부서져 나뒹군다.
엄청나게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입장료만 복원비에 써도 이 정도까지는 되지 않을 듯 한데 캄보디아의 현실은 아직 턱에 닿는 생계에만도 힘에 겹다.
더구나 내전의 와중에 고고학자들이 모두 학살을 당하고 그 자료마저 망실되었으니 완전한 복원은 영영 불가능하게 되었다.

중요한 유물은 모두 약탈당하고 남은 것은 망가지고.....

이 근처에는 이런 사원을 지을 만한 돌이 나는 곳이 없다.
50km 밖에서 코끼리를 동원해서 돌을 끌고 와서 10만의 노예가 지었단다.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다.
크메르는 제정일치의 제국이었다. 왕은 곧 신이고 제사장이었다.
남의 나라 유적이라고 고개를 돌리기엔 그 파괴된 모습이 너무나 처참해서 가슴이 아팠다.

우리나라의 해태처럼 성스러운 곳을 지키는 수호상 싱하.
얼굴이 약탈자에게 잘려나갔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한 탑과 또 그렇게 무너진 탑의 잔해들.
위대한 조상이 내려준 것을 그들은 지킬 힘이 없다...
다른 유적지에서도 내내 느꼈지만 프놈바켕의 폐허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무심한 관광객들은 여기저기 아무데나 함부로 앉아 웃고 떠들며 땀을 식히고 있었다.
서늘한 저녁바람이 부는 사원, 돌에 새겨진 문명은 천천히 죽어간다.
웅장한 제국의 속절없는 껍질처럼, 그 잔해처럼, 프놈바켕의 아름다움는 쓸쓸하고 처연했다.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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