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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여행

여행 둘째 날- 캄보디아의 여인들, 그리고 마사지.

by 소금눈물 2011. 11. 8.

08/18/2008 07:50 pm공개조회수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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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를 돌아본 첫 날이 저물어 간다.
캄보디아의 전통무용 압살라 공연이 있는 커다란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왕실 행사에서 열리던 무용이라는데 사실은 그 이름에 비해선 무대도, 내용도 조금은 초라했다. 대부분이 어린 소년, 소녀들로 보이는데 앙코르왓 부조에서 보았던 내용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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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극장식으로 아주 넓었는데 한국인 관광객이 전부인 듯 했다.
음식은 호텔만큼 맛있고 정갈했다.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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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토리가 부족했던지 중간쯤에는 난데없는 중국기예도 등장했다.
손짓 발짓으로 나타내는 이 나라의 무용예술을 이해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래도 아담하고 참 예뻤던 무용수들.
캄보디아 사람들은 우리나라보다 대체로 체구가 작고 여려보인다. 여성들은 가무잡잡하고 눈이 빛나며 굉장히 미인들이었다. 나이를 짐작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캄보디아에서 받은 인상 중 하나가 이 나라는 여성의 힘이 눈에 띄일만큼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모계사회인 캄보디아는 여자가 결혼을 할 때면 덕담으로 "백 남자, 천 남자를 만나라"고 한단다. 귀머거리 3 년, 벙어리 3 년 어쩌고 하는 우리나라 새색시들은 상상도 못할 얘기다.
잦은 외침에 시달렸던지라 그랬겠지만 남자들이 전쟁터로 떠나고 집안을 지키고 꾸려가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집안의 경제권도 당연히 여자가 가졌고 재산은 맏딸이 물려받았다. 남자들은 결혼하면서 데릴사위로 처가로 들어가 가정을 만들었다.

그런 문화여서 그런지 스쳐가는 이방인의 눈에 보기에도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적극적으로 보였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도 단연 눈에 띄게 활발했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를 썼고, 거래를 하는 중에도 이것이 한국말로 무엇이냐, 한국말로 숫자는 어떻게 세느냐 거듭 물어보고 따라해보며 배우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는 유적지에서 손을 내미는 아이들조차 여자애들은 남자애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몸짓도 비교도 안되게 끈질기고 당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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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따라다니느라 몹시 피곤해졌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발마사지다.

마사지샵에 들어가면서 간단한 말을 배웠다.
끌랑끌랑- 세게. 츠 - 아파요. 띡띡- 살살-

하루종일 총총거리고 따라다니느라 종아리가 몹시 부었다. 발등은 아예 호빵처럼 부풀었다. 나를 맡은 이는 10대 소녀처럼 보였는데 몹시 수줍어했다. 그래도 솜씨는 정말 좋았다. 종아리 근처만 손을 대어도 질겁을 하며 "띡띡~~" 외치는 내게 몹시 미안해했다. 그녀의 실수가 아니었는데.
손짓으로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 원래 조금 문제가 있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른 손길이 한결 조심스러워졌다. 부드럽고 치밀한 손놀림에 몸을 맡기고 가물가물 잠이 들었다.
온 몸이 노곤해지면서 믿을 수 없이 편안하고 시원했다.
발마사지라더니 다리, 발, 팔을 거쳐 등, 온몸에 머리까지 해주었다. 쉬지도 않고 한 시간을. 얼마나 힘이 들까, 자신보다 큰 체구를 그렇게 쉼없이 두드리고 주무르고 .-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갔을 것이다. 생각하면 한 사람의 그 온전한 몸의 노동을 돈으로 지불한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는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하루가 저물었다.
호텔로 돌아와 아래층 언니네로 가서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과일을 벌여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곤하지만 참 좋았던 하루가 끝나간다.
땀띠로 온 몸이 우툴두툴 볼썽사납게 되어버렸지만 이런 피로감도 기분좋게 느껴질만큼 앙코르왓에서 보낸 하루는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