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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The Island Of Life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ocklin

by 소금눈물 2019. 7. 31.




7월이 다 갔다.

직장의 묵은 달력을 갈려다 보니 아르놀트 뵈클린의 그림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다보니 우울해진다.

<그림편지>에 뵈클린의 그림을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이 특별한 화가의 그림은 볼 때마다 서늘하다.

언뜻 보아서는 거의 같은 시기의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그림과 느낌이 상당히 비슷하다. 신화나 전설,문학작품등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들은 환상적이고 아련한 붓터치로 그려지지만 라파엘전파화가들의 그림보다 더 어둡고 죽음의 그림자가 더 짙다.

1848년 2월 혁명이 잔인하게 진압되는 현장을 목도하고, 자녀 열 넷 중 여덟을 잃은데다 1차대전이 다가오는 세기말의 어둡고 음울한 사회적 분위기가 그가 천착했던 죽음과 전쟁의 형상화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뵈클린의 그림은 유독 조용하다. 죽음의 빛이 유독 강한 그림들이 떠들썩 할 수는 없겠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인 라파엘전파의 그림들과 달리 도저한 허무와 침묵의 농도가 다르다. 스틱스를 건너는 카론의 노 소리도 사라져버리는 검은 심연, 공중을 날아다니는 타나토스의 광포한 낫 아래 도망치는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죽음의 상기를 통해서 살아있는 것들의 허무, 내세에 대한 기원을 표현했던 바니타스와는 그 성격이 다른 침묵과 염세의 죽음이다.


<죽음의 섬>과 반대되는 시리즈로 그려진 그림이겠으나, 제목과 달리 나는 이 그림에서도 죽음의 그림자를 본다.

발랄하고 화사한 춤들, 생명의 기쁨- 이라고 씌여진 설명을 읽으면서도 이 설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호수 속의 섬? 혹은 피안? 언덕 위에서 군무를 하는 사람들이나 물 속에 잠겨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이들에게서도 생명의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 언덕은 뵈클린의 다른 그림속에서 보았던,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어떤 피안이다. 오고 가는 곳의 근원이 없는 살아있지 않는 넋들의 춤.  흰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은 역설적이고 이질적으로 보인다.


'생명'의 섬에서 타나토스를 읽는 것은 나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