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을 한 직업을, 한 직장에서 유지하다보니 이게 적성에 맞고 안 맞고 하는 말들은 사실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저 눈 뜨면 일어나서 나가는, 의식이 없어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성격이나 취향에는 정말로 정말로 안 어울리는 직종인데도 말이다.
근년 들어 은퇴이후의 계획을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참이다.
나이도 나이고, 그만 하면 할 만큼 오래 하기도 했다. 사실 한참 전부터 몇 번이나 퇴직을 생각하면서도 어찌어찌 끌려온 셈이다.
은퇴를 하면 맨 먼저 유럽으로 달려가 평생 소원이던 유럽미술관 순례를 두어 달 할 생각이고 그 다음엔 대만으로 가서 어디 바닷가 마을에서 딱 두 달만 뒹굴대다 오고 싶다.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를 어슬렁거리고 저녁에는 불빛 흐린 동네 샤오쥬디엔에서 맥주도 마셔보고.
이 년 후에는 집 규모를 줄여서 이사를 할 생각이다.
한정없이 늘어나있는 저 책짐들, 손님맞이용으로 들어차 있는 이부자리들이며 옷가지들도 정리하고 짐도 한참 줄여야겠지.
이년동안 집도 좀 고쳐놓고 도배도 새로 해놓고.
이 집에서 늙으리라 생각하며 짜넣은 서재 책장들도 줄여야할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으로 된 인생 첫 집이고 친구들과의 추억도 많았던 집이라 떠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남 주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은퇴하고는 이제 편히 공부도 하고 쓰다만 글들도 쓰며 조용히 살자 생각했는데 뒤척이다 생각해보니 소일삼아 두 번째 직업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자주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서 나도 몰랐던 내 재능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의외로 관광가이드 같은 게 적성에 맞는 지도.
큰 여행사나 홈쇼핑 같은 데서 하는 그런 시끌벅적한 여행상품 말고, 나처럼 조용히 살금살금 다니는 사람들이 좋아할 상품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다녀보니 의외로 남들 다 아는 유명한 관광지보단, 현지에서 만드는 소소한 추억을 더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요란한 관광지 말고,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거 집어넣고 현지사람들이 사는 조용하고 작은 주택가 작은 호텔에서 묵으면서 현지 맛집 찾아다니고 현지 사람들이 가는 작은 시장에 가고. 그런 거.
공부하는 김에 관광통역사 시험도 봐볼까? HSK 시험이 3년 유효했던가? 내년에 JLP 마치고 관광통역사를 알아볼까?
생계가 매달린 직업이라면 쉽지 않은 직종이긴 하지만, 은퇴하고 소소한 소일거리로 여행다니는 김에 함께 간다 생각하면서 해보면 할 만하지 않을까?
흐음...
'그룹명 > 펼쳐진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갑을 찾다. (0) | 2018.12.18 |
---|---|
조명교체 (0) | 2018.12.16 |
궁시렁- (0) | 2018.12.05 |
12월 4일 하루 한 줄 공부 (0) | 2018.12.04 |
일본어를 왜 배우니 ㅜㅜ (0) | 2018.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