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표지만 보고 참 예쁜 책이구나 생각했다.
일본식 단독주택 지붕 위로 넓게 자리한 하늘이 무엇보다 시원해 보이는 데다, 낡은 집일망정 각각의 공간에 자리한 인물들도 다름의 이야기를 가진 예쁜 그림처럼 보여서 그다지 심각한 책일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뚜껑을 열자마자 첫 줄 -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
책의 첫 문장은 독자를 이 책에서 압도하여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한다.
단순하고 선명하고 뒷골이 서늘한 짧은 문장.
70세 사망법안이라니. 국가와 제도가 살인을 법적으로 결정하고 이것이 시행된다는 말이다.
단순해보이지만 이 한 문장은 작가가 이 책이 어떤 책인가를 말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영리하고 선명한 문장이었다. 타협하지 않고 의뭉떨지 않고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던지는 화두에 비해 이야기의 구도는 단순하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2020년 일본, 저 출산 고령화로 국가재정이 위기에 닥치면서 '쓸데없이' 오래 살아 연금으로 젊은 세대의 부담이 되고 국가재정을 좀먹는 노인들을 합법적으로 사망시키는 법안이 통과되고 이 법안은 2년 후부터 발효되기로 한다.
당연히 이 법안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사망당함의 당사자인 노인들의 반발과 고통스런 오랜 병수발에 지친 다음 세대들의 환영이 충돌한다.
이 법안의 이해당사자(사망, 혹은 법적살인- 의 사안을 두고 이해당사자라는 말이 난감하지만 사실 그렇다)들의 각각의 처지와 목소리, 고통과 분노가 다카라다집안의 구성원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앞표지를 다시 보았다.
내용을 읽지 않고 예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보는 그림은 서늘하고 쓸쓸하다.
몸을 쓰지 못할 뿐이지 살이 쪄가면서 수발하는 이에게 고통만 더하고 있는 시어머니를 돌보는 며느리 도요코의 방은 끝없는 징벌을 받아야 하는 감옥 같다. 평생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지만 아내의 고통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는 남편 시즈오는 집 밖에 나와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그는 가족 안에 있지 않고 자신의 짐을 평생 아내에게 맡기고 부외자로 살아온 것이다. 명문대를 나왔지만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히키코모리가 되어가는 아들, 그 역시 지친 어머니의 수발을 받으며 스스로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아래층의 할머니처럼 어머니의 등에 업힌 짐이 되어버렸다. 명문대를 나오고 번듯한 직장을 가졌던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조차조 감지덕지할 처지. 그렇다고 그런 일조차 열심히 찾아할 생각도 없다. 실직 3년 만에 뚜렷한 커리어도 능력도 없는 백수가 되어가면서 그 노인들처럼 자신도 역시 그와 별다르지 않게 연명하고 있다. 침대도 화장실도 냉장고도 다 갖춰진 자기만의 공간에서 어머니가 정성들여 지어주는 식사를 받아먹으면서 할머니의 유산을 물려받을 희망을 가질 뿐이다. 어머니의 고통을 알지만 어머니가 도움을 청하는 손을 뿌리치고 집 밖으로 나가버린 딸 모모카. 그 손을 잡으면 자신은 어머니가 뒤집어쓴 덫을 물려받는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어머니를 외면한다.
총명하고 진취적인 여학생이었고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지금은 아무 소용도 없다. 자기 이름으로 된 전화기 하나 갖지 못하고 개인 계정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는 디지털문맹이 되어버렸다. 지긋지긋한 이 감옥이 싫어서 시어머니가 죽기만을, 그래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리는 도요코. 남편이 퇴직하면 자신의 짐을 덜어줄까 기대를 가져봤지만 이 철없는 남편은 조기퇴직을 청하면서 자신에게 보내는 보상으로 친구와 세계여행을 떠나버리고 만다. '현모양처'인 아내가 '따뜻하고 사려깊은' 어머니와 잘 지낼 것이라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의 뇌리에 노인을 함께 봉양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자신이 보기에 기꺼이 잘 감당해온 아내의 일이고 앞으로도 잘 해나갈 것이니 자신은 열심히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이제 좀 자신만의 삶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모든 짐을 자신에게 떠맡긴 남편과 이기적인 시누들, 갈수록 모질고 짜증만 늘어가는 노인과 어머니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식들 사이에서 분노한 도요코는 이 감옥을 탈출해버리기로 작정한다.
어머니의 온전한 희생과 수고로 돌아가던 이 집은 일시에 멈춰버린다. -
한 집안 구성원들의 충돌을 통해서 절벽에 다다른 고령사회의 면면이 구체적으로 보여진다면 이 문제에 제기와 진행과정은 아들 마사키가 방에 틀어박혀 보는 티비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중계된다. 요컨대 두 개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면서 문제의 겉과 속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법안이 불러온 격렬한 갈등이 중계되고, 노인병수발이 무서워서 도망친 모모카가 역설적으로 직장으로 들어간 노인 요양병원에서 오히려 죽음을 해방의 날로 기다리는 연명노인환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대비되면서 장수시대의 고통과 사회적 문제 해결이 충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직업적으로 이런 고령화사회의 문제는 피부에 닿는다. 오래 사는 것이 스스로나 가족에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많이 느낀다. 몇 대가 한 울타리에서 살고 앞 세대의 노후를 뒷 세대들이 함께 돌보며 가족의 품안에서 임종을 맞았던 우리 전 세대와 지금은 다르다. 앞 세대의 주인으로, 병든 부모를 자식이 수발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던 부모세대들이 자신들은 그 봉사를 받지 못하고 요양병원으로 가면서 느끼는 분노와 슬픔도 역시 많이 보았다. 부모를 직접 돌보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가족들도 부모의 와병이 길어질수록 대부분 현실을 인정한다. 이제 우리는 아무도 내 집 안방에서 죽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래 사는 것은 결코 복이 아니다. 치매나 중증질환으로 가족이 분열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사회면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지 않은가. 오랜 와병에 지친 것은 보살피는 가족들만의 고통이 아니다. 당사자인 노인들 중에서도 목에 생명을 공급해주는 액상관을 끼우고 간단한 의사표현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들에게 사망법안 가결은 구원의 빛이다. 사랑했던 이들은 오래 전에 저 세상에 가버렸고 옆에 남은 누구도 자신의 삶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고통. 오늘 살아있으니 그저 죽지 않고 있을 뿐인 생명...
아마도 작가는 나보다 훨씬 착한 사람이었던지, 그래도 아름답고 이상적인 결말을 보고 싶어한 듯하다.
엄마의 부재로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도우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암시를 두고 이야기는 끝맺는다.
- 그러나 내 생각에 그런 일은 없다. 사회구조가 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더 나빠지지 않고 해피엔딩이 될 여지는 많지 않다.
경제생활에서 물러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면서 우리는 쓸모없는 폐기물이 되어갈 뿐이다. 냉정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당연히 나 역시 그렇게 될 테고.
우리 사회은 우리보다 조금 먼저 가면서 이런 사회를 겪고 그나마 대비를 하고 있는 일본보다 더 빨리 초고령 사회를 만들면서도 대비는 거의 되어있지 않으니까.
희망적인 이 책보다 나의 결론은 더 암울하다. 냉정하고 가혹한 말이지만 이게 현실일 거라고 생각한다. 남의 손에 내 의식과 몸을 의탁하는 일은 정말 없었으면 좋은데. 그때까지는 살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ㅜㅜ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내 말은 늙어서 병든 사람이라고 쓸모없이 일찍 죽는 게 좋다는 저주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고령화사회는 그렇게 와 버렸고, 우리는 그런 쓸모없는 물질이 되어버릴 뿐이라는 비관..
무거운 주제에 비해 문장은 깔끔하고 속도감이 있다. '번역문투'를 몹시 싫어하는 내게 그런 냄새가 전혀 나지않는 문장들도 좋았다. 번역자의 수고와 힘이겠지.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가족 중에 노인이 있던 없던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될 것이고(물론 안 될 수도;;;;;), 노인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가정은 없다. 그런 면에서 읽어야 하는 독자는 우리 모두일 것이다. 노인문제는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의 수고로 해결될 수도 없으니 더더욱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고민하고 협력해야 할 일이다.
벽에 뭔 칠을 하더라도 오래 살고 싶어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꼭 보여주고 싶다. 돈이 엄청 많아서 경제적인 부담은 전혀 들지 않겠지만, 게다가 이런 복잡하고 슬픈 감정에 손상당하지 않는 단단한 심장을 갖고 있으니 별다른 상처도 없을 사람이니 소용없으려나.
늙어가며 좋은 것은 더 이상 젊음이 주는 타인과의 교류에서 오는 고통과 부침에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거, 그래서 나는 지금처럼 노후 역시 그다지 공포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직 덜 늙은 오만인가. 이런 노후는 정말 무섭다. 어차피 나는 혼자 죽겠지만 치매는 걸리지 않았으면. 내 몸을 마지막 날까지 내가 돌보다 떠날 수 있었으면.
너무 오래 살지 않기를 바란다.
제목 : 70세 사망법안, 가결
지은이 : 가키야 미우
옮긴이 : 김난주
펴낸 곳 : 왼쪽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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