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화가들의 전시는 거의 해마다 우리나라에 오고 올 때마다 챙겨보는 편이긴 하지만 솔직히 좀 식상해지는 감도 없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인상파그림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교과서들을 통해 익숙한 그림들이기도 하고 일단 그림들이 예쁘고 따뜻하니 진입장벽도 비교적 낮은 편이라 그런가. 아름답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림들을 좋아하는 건 보편적인 정서긴 하지만 이렇게 일단 흥행이 보장되다보니 다른 장르가 좀 쳐지는 경향이 있고... 뭐 미술관쪽에서도 대중의 호응이 좋으니 우선적으로 고려되겠지만.
일단 티켓을 끊어놓고, 아마도 이번 전시를 끝으로 당분간 인상파는 끊고 다른 전시들을 챙겨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림들은 물론 아름답고 물론 감동적이긴 하지만, 고갱, 고흐, 모네-..인상파의 그 많은 화가들 중에서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도 좀 많았으면 싶은데 막상 가보면, 리스트에는 있지만 작품들은 내 기대보다는 다른 그림들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역시... 가서 보면 역시 좋은 건 좋은 거다.
오긴 오지만 작품 수는 매번 많지 않았던 시슬레와 피사로 그림들이 풍성했고, 장 제롬과 오딜로 르동의 그림들이 많아서 정말 행복했다.
보나르는...역시 오긴 왔지만 마르트의 그림은 없었다. ㅜㅜ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그림.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포위>
내 시선을 끈 것은 중간의 여신보다도, 주위를 둘러싼 천사들이다.
복숭아빛 발그스름한 뺨과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표정들. 신산스런 이 세상의 어떤 구름도 닿지 않는 그야말로 천사들의 사랑이 담뿍 담긴 눈길들이다.
그 중에서 저 사랑스런 발바닥이라니.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꼬부리고 뻗고 발꿈치를 디디고- 분홍색 뒤꿈치와 발바닥들을 보라. 정말 밀가루반죽처럼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피부를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 화폭 앞에서 다들 침을 흘리며 저절로 하트눈이 된다.
아 정말 이토록 사랑스러운 천사들이라니!
그리고 또 한점
마리 콘스탄티노프나 바시키르체프의 <모임>이다.
19세기 말, 제정러시아, 정말로 간단치 않았을 시절일테다.
전 국민의 80%가 농노여서 사람이 개, 돼지보다 나을 것 없었고 실제로 가축들처럼 사고팔리던 때였다.
곪을대로 곪아 절벽으로 치닫는 제국, 어른들의 분노와 절망은 아이들의 놀이에도 그려진다.
뒷골목 벽에 개구장이들이 그려놓은 낙서는 사형대에 매달린 죄수의 시체다.
사형이 특별한 재판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수시로 일어나는 이벤트였고 사람들은 구경거리로 몰려들어 즐겼다.
어제인가, 혹은 오늘 아침인가, 광장에서 벌어진 누군가의 사형을 아이들은 벽에 그리며 논다. 어른들의 '놀이'는 아이들에게 고대로 비춰진다.
무슨 얘기들을 하는 것일까.
이 개구장이들의 대장격일 듯한 소년은 이 중에서 덩치도 제일 크다. 입성도 그럴 듯 하고 모자와 가방까지 갖추었다. 아마도 일찍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푼돈을 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숙한 아이가 말하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홀딱 빠졌다.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이며 이 녀석이 들고 있는 물건을 바라보고 있는데 관람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중간의 한 녀석이다. 이 녀석만은 대장꼬마가 들고 있는 물건이 아니라 바로 그 녀석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 그거 사실이야? 어디서 약을 팔고 있는 거 아냐?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는 걸?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꼬마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이 귀여운 회의주의자 같으니라고 ㅋㅋㅋ
이 녀석의 눈빛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일행들과 다들 몸을 꼬면서 귀여워했다.
아 역시 오길 잘했구나 ^^
올해 오르세미술관 전 가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꼭 봐주길 바란다.
물론 그림 크기가 작지 않으니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지만, 중간중간 프로파간다 미술 사이에서 이렇게 꾸밈없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눈빛은 저절로 미소를 멈출수 없게 한다.
역시나 오르세! 명불허전!
아마도 다음 전시도 나는 또 갈 수밖에 없겠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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