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정을 짜면서 얘기가 나온 게 4.3공원이었다.
트라우마를 걱정하면서도, 이렇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거길 가 보겠냐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찾기 쉬운 곳은 아니지만 정말 꼭 가 봐야 하는 곳.
주니어가 있어서 좀 걱정은 되지만 알아서 엄마들이 잘 케어해주기로 했다. 그런 다짐이 미리 필요할 만큼 어렵고 힘든 곳이었다.
안세미오름을 내려오면서 비는 어느새 제법 굵어졌다.
공원 바로 옆에서 무슨 축제 마당이 열린 것 같은데 우리는 거기가 목적이 아니고 -.
기념관 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기둥. 거기에 붙은 기념관 여러 곳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이 사진을 보면서부터 벌써 눈물이 줄줄 나왔다.
겨우 나이 스물 다섯, 두살배기 딸을 가슴이 품은 채 얼어죽은 여인.
내게 4.3은 대학시절 강요배의 그림으로 처음 다가왔고, 이후에 현기영의 소설로 조금 알게 되었다.
우리 근현대사 6.25 말고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가장 끔찍한 범죄의 역사이다. 아직도 피해당사자가 살아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제 이름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4.3사건'으로밖에 불리워지지 못하는 고통스럽고 참혹한 사건이다.
어떻게 된 나라가, 명백히 그 가해자가 존재하고 피해자가 살아서 증거하는데도 피해자가 오히려 숨고 잊어야 하고 - 그런 일들이 부지기수이다. 무려 몇만 명 단위의 아무 죄 없는 양민이 학살을 당했고 그들의 주검이 제주 곳곳, 공항을 비롯해 가장 유명한 관광지와 저 아름다운 오름들에 버려져 묻힌 채 말이다.
아직도 4.3의 비극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고 여전히 모욕은 진행 중이라는 것이 정말로 가슴 아프다.
기념관을 돌아보다 시간을 너무 지체해버려 이 곳들을 다 참배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 다시 이곳을 올지 모르지만 꼭 찾아뵙겠다는 마음을 숙제로 남긴다.
해설사(아마도 신부님?)께서 설명해주시는 제주 4.3의 역사와 배경이 백비를 두고 펼쳐졌다.
白碑. 비석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이력을 새기고 그를 추념하는 빗돌인데 아무 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명확하게 그 사건의 이름을 받지 못한 아쉬움과 고통이 훗날에 제대로 조명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대로 백비로 남았다.
백비가 제 이름을 얻고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온전히 서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제주에서 '동굴'은 사람을 품고 지켜주는 집과도 같은 곳이었다고 하신다.
하늘의 빛이 떨어져 백비를 비추는 형상이 백비가 바로 서기를 기다리는 희망의 상징 같아서 더 마음이 저리다. 우물속같이 깊이 떨어진 곳에서 하늘을 우러러 피에 젖은 손을 올려 하늘에 기원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집과도 같았다..- 던 그 동굴 안에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들이 있었느냐... 무서운 반전이다.
이후의 자료 사진들은 다시 되새기기도 두렵다.
일일이 똑바로 바라보고 새기기 어려울 만큼 무섭고 고통스럽다.
(제주 4.3 사건의 개요- 다음 백과사전 참조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1439)
무고한 희생자들의 증언과 사진들이 걸린 방은 차마 발을 딛고 건너가기가 괴로울 지경이다.
지옥은 멀리있지 않았다.
그리고 지옥을 만든 외세는 '원인에는 흥미가 없었다', 살육과 소개만 필요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해안가부터, 그리고 중산간마을이 불에 타 사라지고 이윽고 제주 온 섬이 불바다가 되었다.
총에 맞아죽고 바다에 빠뜨려죽고, 맞아죽고, 불태워죽고, 우물에 던져지고, 산채로 묻혀졌다.
죽창에 찔려죽고 칼에 찔리고 얼어죽고 굶겨죽였다.
이승만과 서북청년단, 그리고 미 군정에 의해서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3만여명이나 학살되었다.
2003년 10월31일, 비로소 이 나라의 국가원수가 최초로 국가의 잘못으로 벌어진 가혹한 범죄를 사과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였다.
한을 어찌 다 잊을 수가 있을까마는, 그 긴 세월동안 모함과 고통속에 숨죽여 살아야 했을 제주도민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이후 정부는.... 모르겠다.
지금 정부의 모습에서 나는 서북청년단의 그림자를 본다.
매달린 쪽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생각한다.
잊혀진 역사는 어떻게 우리 앞에 다시 살아오는가.
다시 돌아온 역사는 어떻게 다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악마의 모습을 나는 두려워하며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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