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때문에 알게 된 어떤 가정이 있습니다.
칠십이 넘은 아내는 삼십 넘어서부터 중병이 들어 근 40여 년을 자리 보전하고 있습니다.
외동딸은 오십이 넘었는데 정신연령이 많이 낮아요. 거기다가 이런저런 중병을 또 앓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 정도 간신히 알고 집 나가면 옳게 찾아오지를 못합니다. 자신을 가꿀 줄도 몰라서 늘 악취가 나니 사람들도 싫어하고 피합니다. 어찌어찌 비슷한 남자를 보내 억지로 결혼을 시켰는데 한 달도 못 되어서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자가 둘이나 있다고 해도 가정을 돌볼 사람은 아버지 뿐입니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지요. 먹거리나 입성이 변변할 리 없습니다. 좁아터진 집에 숨이 턱턱 막히는 악취가 납니다. 하루에 몇 번씩 누운 자리를 살펴봐야 하는 지라 하루종일 집을 비울 수도 없으니 변변한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평생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구요. 하루 세 끼 아버지의 손길 없이는 안 됩니다. 정서교감이 되지 않는 딸은 아버지가 무엇을 시키면 화부터 내고 욕을 합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습니다.
거의 평생을, 등에 지고 살아온 아내와 딸이 너무 무겁고 괴롭습니다. 남들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만 죽지 못하는 가족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죽어야 끝나겠지요. 그만 죽었으면 좋겠어요. 왜들 그리 못 죽고 오래 사는지. 남편으로, 애비로 할 말은 아니지만 이젠 나는 그냥 딱 죽고 싶어요."
하나님...더는 참을 수 없어요.
이렇게 나약하고 지친 나에게 무엇을 더 얼마나 견디라 하시는 건가요.
아직도 견뎌야 할 몫이 남아 있나요.
말씀해 주세요.
어디만큼 걸어가야, 어느만큼 더 버텨야 당신의 섭리를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저는 너무나 지쳐 있습니다.
제겐 남은 삶도 길지 않습니다.
지치고 초라한 제 목숨으로 어떻게 이 고통을 이기라 하시는 건가요.
말씀해 주세요.
거기, 계신 건가요.
제 슬픔을, 제 고통을
당신, 보고 계신 건가요....
하기 좋은 넉넉한 위로로, 살다보면 좋은 끝도 있노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긍정적으로 살라고,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많다고, 사람들은 그럽니다.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침에 깨어나는 일이 괴롭고, 저녁에 잠드는 일이 고통스러운 늙은 아버지의 얼굴에는 이제는 눈물도 말라 있습니다. 생활능력이 없는 가정에, 다달이 푼돈으로 나오는 지원금에 세 목숨이 달려 있는데, 아내와 딸이 쓰는 약값과 병원비는 저승사자처럼 아버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입바른 소리로 위로를 하지 못했습니다.
가끔.... 우리가 가진 말들이 참 가난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는 일인데, 듣고 싶지 않은 그런 말을 듣는 아버지가 참 많습니다.
자식을 잃고 국가에 두드려 맞는 아버지들, 벗어날 수 없는 가난 때문에 도리와 염치을 잊고 살게 된 아버지들, 자식들이 떠난 빈 둥지에 버려진 늙고 아픈 아버지들, 남들만큼 먹고 살게 준비는 되었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등 돌리고 멀어지게 된 아버지들, 그렇게 남은 아버지들, 슬픈 아버지들...
달래 줄 어떠한 말도 찾지 못하고 그저 나는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울고 있는 아버지. 당신이 가진 것은 무섭도록 외롭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울음 소리 뿐인 저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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