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을 사이로 두고 사랑채를 나누어 쓰던 아버지가 오래 전에 죽고 이 방은 한동안 비어 있다가 할아버지를 수종들던 승호가 머물렀다. 승호가 액정서 별감으로 떠나고 업동이로 들어와 살던 김창이 장용영으로 떠난 것도 벌써 몇 해. 그리고 이 방에는 내내 머무는 사람이 없었다. 과거준비를 핑계로 불일암에 은거하다시피 했던 헌이 김창을 본 것도 그때였다. 할아버지가 위독하다고, 누이인 운정을 따라 자신을 찾아왔던 이른 봄날이었다. 할아버지의 병은 그저 노환일 뿐이었다. 몇 해를 집을 떠나 사는 손자를 불러들일 욕심에 칭병을 한 것이었다. 단 한 번도 따뜻한 눈길로 돌아봐주지 않던 할아버지가 비로소 자신을 찾았을 때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헌은 그래도 마지막이 되어서는 자신 밖에 없다고 마음이 누그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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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문제는 설명과 묘사의 구분이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문제. 나는 늘 이것이 어려웠다.
글이 못난 사람이 저지르는 짓. - 어떻게 이 경계를 잘 넘어갈까. 영 못 될 것 같다.
이럴 때면 정말, 정통적인 수업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 새벽에 일어나 이런 저런 책을 뒤지고 고민하고 길게 써 보다가 다시 지우기를 거듭하면서, 이 불편한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머리를 짜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쓸까. 어떻게들 넘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