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손이 가져온 사도세자의 문건에는 참으로 놀랍고도 참혹한 진실이 들어있었습니다.
노론이 좌우하는 조정인줄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하나도 빠짐없이 이 조정의 중신들이 모두 그 역모에 가담하고 있었을줄이야...
당신의 실덕을 한스러워하는 전하의 마음을 달래줄 수가 없었습니다.
회한이 서린 전하를 보고 있는 저하도 마음이 어둡습니다.
아바마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노론의 중신들과 중전마마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조정.
선세자마마를 노렸던 칼날은 이제이제 자신에게 돌아오겠지요.
용상에 오르는 일이 이토록 힘겹지만 또 오른다 한들 그들 무리가 쉽사리 숙여줄까요.
길고 힘든 싸움이 되겠지요.
기다리세요 오라버니.
세손이 살아돌아왔다고 끝나버린 일이 아닙니다.
제가 말했었지요.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내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중전마마의 탕약.
의식을 잃은 전하께 어의 몰래 올려야 하는 약이랍니다.
지금껏 충실하게 중전마마의 영을 따랐던 상선영감, 이제 기로에 섰습니다.
묘시까지 기별이 없으면 이 약을 전하께 올려야 합니다.
묘시... 전하의 윤대가 있을 시각.
어쩌면 이 약을 드신 전하는 영영 윤대를 열지 못하실 지도 모릅니다.
중전마마의 영을 이해할 수 없어도 그것이 전하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던 상선.
허나 오늘의 이 영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일찍 저하는 어마마마와 빈궁마마를 불렀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저하는 지켜줄 수 있을까요.
이 여리고 가엾은 여인들은 그저 당신을 믿고 따르는 것 밖에 아무 할 일이 없는데, 이들을 과연 저하는 지켜주실 수 있을까요.
그동안의 일은 결국 오늘로 이르러함이었던가.
옹주마마는 절망합니다.
기어이 세손은 등극할 것인데, 이제 그렇게 되면 그것을 막고 모함했던 옹주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왜 아직까지 대전내관에게선 소식이 없는 게야.
시간이 이제 다 되었는데!!
마음이 초조해지는 중전.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어쩌자고 내관은 움직이질 않아!!
드디어 날이 밝았습니다.
윤대 시간에 맞추어 대전으로 모이는 사람들.
저하의 눈길을 바로 받지 못하고 피하는 중신들
드디어 오늘이구나.
한 칼에 썩은 노론무리들을 쳐낼 수 있는 날이.
동궁전 땅은 척박하여 그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을까보냐고 비웃던 무리들 앞에 국영이 섰습니다.
오늘이 오지 않기를 그토록이나 힘써 막았는데.
이젠 모든 것이 끝이 났군요.
무어라?
그 탕약을 올리지 않았어?
네가 감히! 네가 감히 내 앞길을 막아?
가져오너라, 네가 하지 못한다면 내가 하리라.
무엇하고 있느냐 당장 가져오래두!!
시간을 넘기도록 소식이 없는 전하.
모시러 온 채제공은 기막힌 모습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전하.
하필 이 막중한 때에!!
전하,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종사가 위태롭습니다. 일어나시옵소서 제발!!
전하께서 쓰러지셨다니!!
의식조차 없으시다니!!
마마께서 하신 일입니까?
분명히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했었지요.
마마와 한 배를 타긴 했지만 전하는 제 아버님입니다.
마마께서 아버님을 시해하려 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이것이 정녕 마마께서 노리신 것이었습니까?
이렇게해서라도 나를 막아보시려 했습니까?
나를 막으려는 것은 참겠습니다.
허나, 전하를 감히 시해하려들다니...
그러고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 발을 들여놓다니!!
부르지 마십시오! 그 입으로 제 이름도 부르지 마십시오!!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절대 더 이상은 두고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들의 숨통을 쥘 물증도 손에 넣었는데 저들의 모략에 전하께서 쓰러지시다니요.
이것은 분명 저들의 짓입니다.
바로 두 시각 전까지 저하를 암살하려했던 자들입니다.
저하의 양위를 막기 위해 저들은 전하를 시해하려 한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 성사된 일이 이렇게 깨어져버렸는데, 어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중전마마께서 아무 대비없이 일을 이렇게 두고 볼 분이 아닙니다.
분명히 마지막 순간에 전하를 시해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승하하시고 세손이 보위에 오르면 모든 것이 끝날텐데 말입니다.
그것은 전하께서 승하하시면 세손이 보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 대비를 하셨다는 뜻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전하께선 제 평생이셨습니다.
전하의 지어미로 전하를 모시게 된 그 날부터 전하께선 제 인생이셨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전 오래토록 전하의 곁에서 그렇게 전하를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를 이렇게 만드신 것은 전하셨습니다.
제가 바친 평생을 외면하신 것은 전하셨습니다.
허니, 아셔야 합니다.
제가 전하앞에서 겨우 이런 말씀밖에 드리지 못하는 것은, 저를 이렇게 몰아세우신 것은 전하셨습니다.
일어나지 마세요 전하.
이대로 다신... 눈을 뜨지 마세요.
아니됩니다 전하.
지켜주겠다 하셨잖습니까.
아바마마의 마지막 소원을 당신이 지켜주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임금이 되라고, 성군이 되라고 하셨잖습니까.
일어나십시오 전하.
아직 어린 소손을 지켜주십시오.
아바마마의 간절한 원을 들어주십시오.
더 이상 일을 미루어 적들의 준동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저하.
윤대를 열었습니다.
비록 전하께서 직접 조정에 나오시지는 못하시지만 어제 아침 내린 윤음으로 전하의 어명을 대신합니다.
난데없이 편전에 들이닥친 중전마마의 말씀으로 어명은 맺지 못하셨습니다.
이곳은 편전입니다.
내명부의 마마께서 오실 곳이 아닙니다!
윤음이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아무도 들은 바 없는 전하의 어명을 사칭하여 지금 미령하신 전하를 참람하게 욕보이시다니요.
역심이 아니고야 이럴 수 없습니다!
이곳에 있어서는 아니될 사람은 내가 아니고 세손입니다.
본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는 전하의 윤음은 나는 믿지 않습니다.
왕명을 출납하는 승지도 들은 바 없는 것을요.
전하의 뜻은 며칠 전 내린 교지에 들은 그대로입니다.
세손을 폐위한다고 내린 그 교지 말입니다.
온 나라가 알고 조정 중신들이 받들은 전하의 어명은 바로 세손을 폐위시키는 것이었어요!!
전하는 아무도 믿지 않으셨습니다.
도승지마저 중전의 수하임을 눈치채신 것이었습니다.
세손의 윤지를 조작하고 전하의 교지마저 빼돌렸던 자들입니다.
허니 당신이 직접 반포하시려했던 것이겠지요.
허나 아뿔싸.
이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이야.
살아남아 문서로 보이는 것은 이전의 교지일 뿐, 전하의 진심이 어떠했던 간에 믿을 마음도 없는 저 자들에게 전하의 윤음이 무슨 의미가 될까요.
우리 저하,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 되셨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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