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영을 자주 내리시던 전하의 의중은 매병으로 인한 혼란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이 더 깊어지기 전, 사직과 세손을 보호하고자 날이 밝으면 양위를 선포하시겠노라는 전하.
하지만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노론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그들을 제압하고 무사히 보위에 오르기 위해선 그들이 꼼짝 못할 임오화변의 진실, 그 물증을 오늘 밤 안에 찾아내야 합니다.
저하의 윤지를 금위영 대장에게 전하러 달려온 우세마.
헌데 영감은 안 계시고 중군이 대신 휘지를 받겠답니다.
급한 전갈이니 전해는 주는데... 근데 어째 이상합니다.
이 비릿한 냄새는 무엇일까요?
세손이 홍화문으로 금위영 군사를 모으고 있다...
인왕산에서 무엇을 찾는다는 걸까.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세손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상관없다.
우리가 먼저 세손의 목숨을 넣을 것이니.
다시 돌아온 중전마마
예전보다 더욱 매섭고 독해졌습니다.
상황을 보아가며 참소할 시간마저 이제 없습니다.
세손이 등극할 시간이 코앞에 다가왔고 이젠 자신의 말을 전하는 믿지 않을테니까요.
아바마마께서 남기신 그림의 뜻을 이제야 알아챈 저하.
금위영 군사와 익위사들을 이끌고 한밤중 인왕산 계곡으로 올랐습니다.
도화서 화원들이 급히 모사한 거북바위를 찾는 저하.
이 군사들속에 역당의 끄나풀이 있을 거라 짐작은 하시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14년을 기다려온 일입니다.
반드시 아바마마의 유지를 찾아낼 것입니다.
저하, 하지만 부디 주위를 살피시옵소서.
믿을 것은 저하의 익위사들 뿐이옵니다.
중전의 영을 거역한 금위영 대장은 급작히 병사했습니다.
그러게 순리를 따르지 않는 자는 제 명을 재촉하기 마련이지요.
앞에 선 여인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알고 있는 중군.
전하께서 미령하여 그 어명을 대신한다는 중전마마 앞에서 금위영 대장의 뒤를 따르지 않으려면 어찌 그 영을 거역할 수가 있을까요.
무섭고 떨립니다.
오늘밤 중군에게도 긴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병에 시달리고 있는 당신의 정신조차 믿을 수 없습니다.
사도세자 때부터 간곡하게 충심을 다하여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보필해온 이 번암만큼 당신의 뜻을 지켜줄 이가 없을 것입니다.
산지사방에 세손의 적을 키워왔음을 이제야 깨닫는 전하.
아무도 모르게 대감을 불러 금등을 전합니다.
이것을 쓸 날이 부디 오지 않기만 바라지만 그런 일은 아마 없겠지요.
기어코 세손은 이것에 의지해야만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런 참담한 사태를 만든 것은 당신의 잘못.
하지만 이제라도 세손을 지킬 방도를 마련해주어야 죽은 아들의 간곡한 뜻을 지켜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군영을 세손이 모두 빼돌리고 노론을 이렇게 무력화시킨 것은 내부의 인물이 세손에게 조력했기 때문이겠지요.
왜 그러셨습니까 이판.
우리의 목표가 이제 목전인데, 어찌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할 것 같은가.
나는 정치를 할 뿐이네.
이제껏 우리는 함께 움직였지만 내 뜻은 자네와는 좀 달랐던 모양이야.
나는 누가 보위에 오르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뜻이 이 나라 백성과 조정에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 뿐이야.
정치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뜻이 맞지 않아도 큰 틀 안에서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를 몰살하며 혼자 틀어쥐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무심한 세상을 비춰주는 저 달빛을 보게.
이 높은 기와지붕이나 뜰 아래 돌맹이에게까지 골고루 환하게 내려있지 않나.
정치는 달빛과 같은 것이 아닌가.
비루한 이 세상사에 뭐 볼 것이 있다고 인간이 이처럼 애면글면하는가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드디어 사도세자의 문서를 찾아낸 저하.
그런데 마음이 급한 나머지 익위사들과 떨어져 낯선 금위영 군사들과 함께 묶이고 만 것을 잊으셨습니다.
그러게 한치도 마음을 놓아선 안되는 것을요.
어떻게 될까요 우리 저하.
우세마!
어디 있느냐 우세마!!
제발 정신을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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