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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펼쳐진 일기장

조용조용..

by 소금눈물 201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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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야후에서 다음으로 이사를 오니 처음에는 정말 적응하기 어려웠다.

하루 방문객이 적게는 칠팔백, 많게는 몇천 명씩 들락거리며 붐비던 집이, 고작 이삼십이다.

그나마도 그 몇십의 손님은 사실 뭘 검색하다 얼결에 들어온 지나치는 손님들이다.

 

내 말이 제법 울림이 있고 누군가가 귀기울이고 있다는 자부, 혹은 그만큼 더 큰 부담과 걱정이 있기도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고 내 글과 말들이 어딘가로 퍼져 또 다른 말씨가 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고.

 

지금은... 아주 텅 빈 사막에서 아주 조그만 집에 처박혀 혼자 잠을 자는 기분이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든 세상은 모른다.

 

이전에 알지 못하던 자유기도 하면서 조금 쓸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갈수록 좀 편해진다.

팔년만에 처음 접하는 자유기도 하고.- 사실 야후에선 가자마자부터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반갑잖은 설화에 휩싸이기도 했고.

 

이제 비로소 내 집이 된 것같다.

강박증처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글을 올리느라 조바심내던 일도 이젠 편해졌다. 누가 볼 것도 아니고 스스로 짐도 덜어버렸다.

편해지면 쓰고 생각나면 얘기하고...

 

너무 편해져서 생각하고 있는 독후감을 자꾸 거르게 되고 스스로 부여한 강제성이 없다보니 너무 게을러져서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참 좋다.

 

세상 같은 건 다 잊어버리고 눈내리는 마가리에 혼자 처박혀 술을 마시고 있는 기분.

안타깝다면 내게 흰 나귀도 나타샤도 없다는 것이지만 대신 내겐 총수가 있고 목사아들이 있고 악마기자가 있고 깔대기가 있으니까. (응? ㅋㅋㅋ)

 

스마트폰 충전기를 갖고온다는 걸 깜박 있었다.

밤새 서울 집회에 신경쓰느라 웹을 들락거렸더니 다 써버렸네.

오늘 하루는 작정하고 아주 조용히 묻혀 살아야 되게 생겼구나.

 

아 좋다.

세상이 이리 시끄러운데도, 현관문 닫고 들어서면 딱 내 세상.

읽지 못한 책이 쌓여 있고, 평화롭게 잘 자는 소심이와 졸리가 있고, 커피도 있다.

치즈와 캔 맥주 하나도 있으니 기분이 땡기면 저 캔을 뜯을 일이고.

 

미안하게도.-

오늘 나는 참 평화롭고 좋구나.

아무도 보지 않아서. 세상이 나를 잊어서. 그리고 나도 세상을 잊고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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