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가 누구냐고?
나 박달호야 박달호.
몰라? 아니칠패 화피전 전주 박달호를 몰라?
아니 이 사람들이 난전장사치라고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야?
다음 임금이 되실 저하께서 우리 난전들도 보호해주신다고 지금 무진 애를 쓰고 계시는데 이제 나도 날마다시전 눈치 안보고 떳떳하게 살아도 될 날이 가깝다고. 이거왜 이래?
거기다가, 저번에 내가 말했지. 우리 집안 종손 대수가 무과에 떠억하니 급제를 해버렸단 말이지. 걔가 원래 또 나를 닮아 어렸을 때부터 영특했어요.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고 기면서부터는 날려고 했던 애야.
사실 말이지, 자랑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구 말야. 이번에 사헌부 지평에 승차하신 홍국영 나리께서일전에 한성의 장정들을 모아서 따로 강학을 해주실 때 우리 대수를 보고 한눈에 딱 점찍은 거야. 너만한 인재가 아직도 이렇게 묻혀 있으니 나라꼴이 이 모양 아니겠냐구. 그래서 걔를 붙잡고 날이면 날마다 왼갖 병서를 다 끌고 와서 가르치는데, 아 이놈이 글쎄 한 귀를 일러주면 그냥 통째로 책을 다 외버리는 거야. 그렇게 똑똑했다니까 걔가.
아 그럼~ 그렇다니까 글쎄. 걔가 다 나를 닮아서 그래요. 우리 집안 대대로, 참 이렇게 사는 게 헙수룩해서 그렇지 머리 하나야 끝내주지. 오죽하면 저하께서 우리 대수를 불러서 나라일을 물어보시... 아니 이건 극비야. 극비니까 혹시라도 관가 사람들이 알면 곤란해. 그러니까 이건 자네만 알아두라구.
아 왜긴! 지금 저하께서 주상 전하 대신에 대리청정을 하고 계시는데 이런 기밀사항을 사람들이 먼저 알고 떠들어봐. 쥐도새도 모르게 포졸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니까.
근데 왜 나를 찾아왔어?
으응~ 주막집 막선이가 또 옆구리를 찔렀구만.
아 그 여편네는 시도때도 없이 사람을 볶아, 볶기를.
내가 좀 인물이 되고 속이 좋다 보니 아주 살기가 번잡스러워요 글쎄. 아 동네 여편네들이 날 내버려두려고 하질 않는다니까 그래.
아 정말이야. 내가 하는 소리가 아니고 남들이 다 그런다니까.
막선이를 어찌 알았냐고?
아 어찌알긴 뭐. 그냥저냥 오다가다 술국 한 그릇씩 먹고 하다보니 얼굴 익히고, 또 내가 딱 보면 쉽게 잊힐 인상이 아니잖아. 일전에 대수놈 따라서 기방골목에를 한번 들어갔다가 아주 고단했어요 거길 빠져나오느냐구. 그냥 분꽃같은 기생들이 다 내 바짓자락을 휘어잡고 놓지를 않어 글쎄.
그러게 자꾸 말을 잘라먹지 마. 말길 헷갈리게.
내가 그렇게 인물이 되고 하다보니까 그 여편네가 홀라당 빠졌는지, 아 시도때도 없이 앵겨붙질 않나, 어느날은 떡함지를 이고 오고 어떤날은 즤 주막은 팽개치고 화피전에 나와서 먼지를 털고 있지를 않나, 밤마다 봉놋방을 절절 끓여댄다고 아주 그동네 나무장수가 나를 보면 고개가 땅에 닿게 절을 해. 해장국 팔아 몇 푼이나 번다고 그러나 했더니 그게 아주 쏠쏠했던 모양이야. 쌓아놓은 살림이 아주 도탑다네 글쎄. 그러게, 홀애비 삼 년이면 이가 서 말이고 과부 삼 년이면 은이 서 말이라더니 딱 그짝이라니까.
에휴...
내가 자네한테는 이런 소리를 다 하네 그려.
자네가 말을 꺼내니 하는 소리지만 나라고 그런 맘 없겠어?
사실 뭐 대수놈이 익위사 관원이 되었다고 해도 그 놈이 내 속을 어찌 알겠어. 천방지축 뛰어다니기 바쁜 놈이 불쌍한 내 처지를 어찌 다 알아. 착하긴 하지. 뭐 이젠 녹봉도 꼬박꼬박 받아오고 어디서 사고치고 다닐 놈이 아냐.
헌데 그게 참...자네도 아다시피 그게 그렇게해결될 속이아니잖아. 그렇다고 내가 그 놈한테 알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한끼 굶은 강아지처럼 막선이가 코맹맹이 소리하면서 달려들면 아주 복장이 터져요 내가. 이젠 말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차마 입이 안 떨어져.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숨길 수도 없고.
말하면 막선이가 나를 받아줄까? 아니겠지? 괜히 망신당하고 구정물이나 안 뒤집어쓰면 다행이지. 그랬다가 동네서도 발도 못붙이고 쫓겨나는 거 아닌가 몰라.
아 정말 내가 그 생각만 하면 밤에 잠이 안와요 아주.
절절 끓는 건 막선네 봉놋방만이 아니라니까.내 속도 절절 끓어요.
제발 누가 좀 알려주시오.
아이고 내 속이 속이 아니예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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