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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한국의 꼭두

by 소금눈물 2011. 11. 29.

 

06/18/2011 03:04 pm공개조회수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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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가 잔망스럽다고 혼날 일이었겠지만 어렸을 때 나는 상여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시골이라 이따금 마을 앞 큰 길로 상여가 지나갔다. 휘황찬란한 상여 뒤를 따라 흰 소복을 입고 곡을 하며 따라가는 유족들 앞으로 훨훨 날리는 만장도 왜 그리 어린 마음에 우수어린 정경이던지.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행렬 앞에서 종을 흔들며 상여를 인도하던 상두꾼의 소리와 에헤이 에헤에이~ 하며 추임새를 하며 따라가던 모습이었다.
그 노래는 왜 그리도 슬프고 처연하던지. 남의 장사에 펑펑 울며 노래를 쫓아갔다. 어린 마음에도 그 노래는 사뭇 애상적이고인간사의 슬프고 괴로운 끈을 이제 놓고 훨훨 간다는 한과 애증이 절절하여 가슴을 후벼팠다.

나이가 들어서도 상여소리 음반을 사 들으며 훌쩍거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영 이별에 대한 슬픔, 삶에서 수 없이 마주치고 자신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죽음, 그 길에 대한 양가의 감정이 불안하고 두려우면서도 또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에 대한 책이다.
지금이야 상여를 쓰는 곳은 드물고 거의 다가 영안실에서 바로 장지로 간다. 그만큼 이별에 대한 의식(識)이 가벼워지고 망자나 남은 자나 살아생전 인연의 애증이나 기원을 풀 계기도 의식(義式)도 없이 한 생애가 소멸한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비슷비슷해진 죽음의 풍경. 우리는 겨우 죽음의 형식에 대해서 '평등'에 조금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의식주의 모든 것이 그러했지만 죽음에 대해서도, 죽음에 이르는 모습에서도 신분이나 빈부의 차이가 컸다.어지간한 상여에 육신을 의탁해서 저승길로 간다는 것은 그만한 위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평생 무명 한 벌로 사철을 나야 했던 사람들은 죽어서 수의 한 벌 갖는 것이 꿈이었고 살아 생전 갖춰놓는 것이 큰 복이었다. 수의 한 벌이 이랬으니 상여야 오죽했을까.상여는 흔히 마을 공동이나 집안 내에서 공동으로 마련하여 썼다.

당장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렵고 온갖 노역에 시달려 이승 사는 것이 저승의 그것과 멀지 않았을 처지에 언감생심 살아도 못 타는 꽃가마를 죽어서 탈 꿈이야 쉽게 꿨겠는가. 그래서 더 그 상여에 온갖 치장과 상징을 하여 이생에서 겪었던 시난고난한 일을 마치고 무사히 평탄하게 저 세상에 도달하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꼭두란 상여를 장식하던 채색한 나무 조각상들이다.
동방삭이나 저승새들, 이생에서 저생으로 넘어가는 다리에 걸쳐진 것들이 혼백을 호위하고 인도하며 가는 것으로 상여를 꾸밈하는 것인줄로만 알았더니 왠걸, 이 책을 읽다보니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장식된다. 문관 무관의 관복을 차려입은 호위꾼들, 저승에까지 따라가 잔소리하고 가르칠 관원과 선비, 호사스런 색동옷을 입은 젊은 처녀와 노인, 장구를 치고 피리를 불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따라가는 재인의 온갖 행렬 등, 살아서 삶을 풍요롭게 하고 황홀하게 했던 권력과 설렘과 즐거운 풍경들이 나란히 서 있다.
혼백을 맞는 저승의 사자들 역시 빠질 수 없다. 저승의 대왕인 염라와 상서로운 짐승을 탄 신선들과 용, 봉황, 가릉빈가의 상징들까지 아주 풍성하다.

대단한 예술성을 가진 조각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것은 아니다. 울퉁불퉁하고 과장되고 서툴게도 보이는 소박한 그 조각들은 그러나 그 생생하고 익살맞은 표정이 아주 생생하다. 마치 죽음 너머의 세상도 이 세상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 미리 너무 고통스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따뜻한 위로 같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인사 같기도 하다.

세상이 달라져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상여가 움직이는 일도 드물고 상두꾼을 앞세워 상여소리를 울리는 일도 더더욱 어려워졌으니 나 같은 사람이 이 꽃가마를 타고 북망에 갈 일이야 아마도 없겠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우리의 일상이었고 마땅한 정서였던 것들이 너무나 빠른 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은 역시나 서글프다. 그것이 산 자의 것이든 죽은 자의 것이든 말이다.

내일은 오랫만에 신영희 명창의 소리로 상여소리나 들어볼까나.
먼지가 잔뜩 앉은 시디랙을 털어야겠다.


제목 :한국의 꼭두- 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
펴낸 곳 : 꼭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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