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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손님

by 소금눈물 2011. 11. 24.

10/01/2004 02:54 pm공개조회수 1 3



며칠 전부터 이 책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내내 올렸다 지웠다 하면서 책장만 넘기고 있다.
무슨 말을 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답답한 주제이기도 하고, 이런 일에 무덤덤하지 못한 관점탓이기도 하겠다.

한 종교가 다른 종교문화권으로 진입할때 포교자와 군대가 짝을 지어 들어가는 일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독교 문화권이나 이슬람문화권이나 혹은 불교문화권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그 종교의 뜻과는 다른, 그 종교의 힘을 발판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이들의 시도이기도 하겠지만)
피를 보지 않고 외래종교가 다른 문화권에 안착되는 일은 드물었다. 눈에 보이는 물산의 이득이나 정치적인 파장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이 바로 종교적인 갈등이다.
우리역사에 등장해서 갈등을 만들고 마침내는 민중의 정서기반에 안착하게된 불교나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의 그들은 "순교"를 통해서 처음 뿌리를 내린다.
따지고 보면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등장해서 순식간에 그 사회계급의 전복을 이루어낸 이념(맑스주의)도 역시 비슷한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아니다 책만 이야기하자. 머리 아프다.

이 외래의 손님이 다만 종교적인 갈등뿐만이 아니고 또 다른 얼굴의 손님, 이념으로 맞부딪치면서 격렬하게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폭발했을때 거기서 고스란히 당해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밖에서 들어온 손님인 기독교와 맑스주의가 해방 직후 북한 신천땅에서 격렬하게 부딪히고 갈등을 겪을때, 거기에 휩쓸려 끔찍한 희생물이 되고만 사람들.
바깥에서 들어온 그 두 손님은, 갈등없이 공존하던 토속신앙의 주인들을 몰아내고 각자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그것을 힘으로 갖기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서로 저지른다.

"북괴공산당"의 이름이 우리에게 주입한 이미지. 섬뜩한 총칼과 무자비한 학살.
아..그런데 다만 우리는 "희생자" "순교자"일 뿐이었나.
어떤 당위의 재고나 갈등의 과정없이, 한무리로 다정히 살면서 평화롭던 한 마을이 무자비한 살육과 번갈아 거듭되는 복수로 끔찍한 역사의 증거물이 되어버리고 그 상처는 수십년이 흐른 후에도 귀신으로 중음을 떠돈다.

고향을 찢어버리고 잔인하게 이웃을 학살하여 두고두고 그 고향의 "학살박물관"의 주인이 되어버린 형.
그 동생이 불현듯 고향을 방문하기 직전에 형은 과거와 화해를 거부한 채 죽음을 맞는데, 죽은 후에 귀신이 되어서 동생과 고향길을 동행한다. 한조각 뼈로 동생의 옷춤에 담겨서.
형과 형이 동무했던 손님들의 흔적은 동생의 상상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참혹하게 남아서 생생한 증거로 뒷사람들에게 읽혀지고 학습되고 있었다.
형이 저지른 과오를 따라가면서 동생은 한풀이 굿을 여정을 통해서 벌이고, 시공을 넘나들며 함께하는 지나간 이들은 현재의 일상과 관념속에 공존하면서 자기들의 말을 담담히 풀어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된다.
서늘한 기운이 등 뒤에서 가만히 서 있다.
고개를 갸웃이 하고 나를 응시하는 그 뜬것은, 신천의 그때 그 사람들이고, 고향을 떠나 이국에 가서도 평화를 얻지 못한 불면의 죄인들이고. 잊고 외면해가는 우리의 귀신들이다.

이 작가의 책은 쉽게 말하기가 정말 힘겹다.
굳은 심지로 또박또박 걸어가면서 눈을 부릅뜬 작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선지자. 한을 품은 민중의 넋을 위로하고 구천으로 보내는 무당의 모습을 나는 이 사람에게서 본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황해도 진노귀굿의 열두마당 얼개로 씌여진 것이라 한다. 그러게 작가는 무당이어야 한다니까.)

책을 말한다 하고 정작 책 이야기는 하나도 못한 것 같다.
그냥... 읽어보라고, 그래보시라고 권할 밖에.
이 책에서 귀신들은 사람보다 무섭지 않다.
이념이나 종교보다 무서운 사람들이 우리 앞에는 다시 없으리라고 장담 못하는 이 땅이 나는 더 두렵다..

정말 두렵다...

그런데...
지금 우리 옆의 그 손님이 누구지?
주인인 우리를 밀어내고 들어와 우리의 생살을 찢고 있는, 저 손님은...누구지?



제목 : 손님
지은이: 황석영
펴낸곳 :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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