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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식물성의 당신..

by 소금눈물 2011. 11. 16.

09/01/2004 05:01 am공개조회수 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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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이 남은 새벽입니다.
낮도 밤도 아닌 이 시간은 그리움이 주인이 되는 시간이지요..

제게 그리움의 주인은 오직 한 사람이어서
이 새벽에 깨어 책장을 넘기다 문득 그 한 이름을 생각합니다.

이 아프고 아픈 이름을 생각합니다.
어느 길에선가, 윤과 윤폐인들의 식물성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제겐 윤과 윤폐인들은 식물성을 가진 사랑으로, 사람으로 떠올려지는 군요.

윤...윤의 것들.

처음 만나던 날의 빗속 대숲.
어린 소녀. 먼 길을 걸어온 짚신에 핏물을 담고 그 앞에 나타난 그 소녀.
가족과 신분을 잃고, 슬픔이 무언지 서러움이 무언지도 아직 모르고, 먼길에 지치고 두렵고 배가 고프기만 했을 이 아이 앞에..한이 뼛속에 서리는 고통과 울분의 그 소년이 나타납니다.
하늘로 날아올라버리고 싶었던 이 명민하고 외로운 소년에게 처음 등을 기대고 일생을 기댄 소녀..
어둠처럼 덮어 쏟아지는 빗속으로 그들에게 대숲은...그렇게 그 시린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녀의 고단한 생의 무게를 처음 손잡아주던, 산사로 가던 길.
세상과 인연을 끊고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하나로 자라던 그들의 유년.
마지막 눈을 감는 그를 통곡하며 옥이 부르짖던 그 산...그들 사랑의 시작이었고 죽는 순간에도 돌아가고 싶었던 그 산...그들의 모태...

처음 마음을 내보이던 매화언덕의 그 달밤...
애틋한 사랑이 달빛에 젖어 흐르는 그 밤, 눈처럼 지던 그 매화꽃잎들..
나란히 걷는 그 뒤로 내내 날리던 푸른 달밤의 꽃잎들...

비에 젖은 갈대... 바람에 휘어져 넘어지는 것같아도 일시에 우르르 일어서 파도를 만드는 그 빗속의 수련장.
그 갈대바다속의 빛무리로 날아오르던 그 사람에게서 저는 지극한 사랑의 호명을 들었습니다.
- 서로에게 "누구"인가를 묻고 대답하던 그 사람들..그런 방식으로 밖에 자기를 열어보일 수 없던 이들의 안타깝고 절절한 부름이었지요.

제게 그들은, 그들의 배경은
눈부신 설원의 그 웃음조차도 순백의 꽃바다로 보이고,
자신을 위해서 위험한 고육지계를 감행하려는 옥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그 달밤조차 목련의 꽃봉지로 보입니다. - 아..그 밤의 윤의 그 저고리 빛이 목련을 연상케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저는 유별나게 윤에 대해선 왜 이렇게 슬픔의 정조로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장각이와 만나던 다리에서, 보랏빛 두루마기의 그를 보면서는, 보랏빛 붓꽃 한송이를 보는 것 같았지요.
조선팔도에 적수가 없다던 그.
팔도 군영에 대적할 자가 없다는 검객이었으면서도, 그처럼 슬픔에 약하고 휘어지는 모습은 갈대의 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의 본분이나 수하들에 대한 경계에 대해선 얼음장처럼 서늘하고 단호했던 그이가 유일하게 아픈 가슴을 내 보이고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모습은 그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만이었지요.

그게...마치...한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푸르른 청청한 한 그루 대나무 같지만 , 또 어쩔 수 없이 가장 나약하고 부드럽고 그 지기가 차마 서럽고 아팠던 매화꽃의 이야기 인것만 같아서요...
그가 강하기만 했다면 우리의 서룬 사랑은 깊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부드럽고 약하기만 했다면 우리의 고통은 깊지가 않았겠지요..

식물성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먼저 칼을 겨누고 이를 앙다문 그런 힘이 아닙니다.
식물성의 부드러움은 그러나 그 인내와 끈기로 천천히 물들이고, 그 물들임의 힘으로 그 대상을 제압합니다.

천년을 건너 그 세상의 소망과 눈물을 전하는 먹으로 쓴 글씨들
그 신비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금동미륵보살의 미소
달빛이 미끄러진 듯 흐르는 백자의 선

모두 식물성입니다.
식물성의 사랑이고, 식물성의 힘이고, 식물성의 인고와 식물성의 기원입니다.
부드럽고 연약해보이나, 그 약해보이는 슬픔과 유연의 깊이로 천 년, 오 천년을 건너와 우리에게 가만히 미소짓는 그 힘입니다.

피 뿌리는 절통도 없고
칼날에 힘입어 세상을 휩쓸고 간 커다란 이름도 가슴 뼈가 꺾이는 울부짖는 한도 아니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쓸어안고 가만히 젖어든 그 부드러운 사랑과 쓸쓸함의 속내입니다, 그 식물성은.

아..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제게 물들인 그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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