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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붉은 양귀비- 조지아 오키프

by 소금눈물 2011. 11. 3.

 




이 그림편지에서만 이전에도 두 번이나 이 그림 얘길 한 것 같다.
이번이 세번째다.
오키프의 다른 그림도 좋지만 자주 가던 그림집에서 처음 마주치고부터 나는 이 그림에 혼을 뺏긴듯이 좋았다.
그때 영 망설이다 사질 못했는데 곧 그 그림집이 문을 닫고 구할 수 없게 되고 보니 두고두고 아쉽다.
복제화라도 마음에 드는 것은 정말 그때 샀어야 하는데...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여성의 성기를 확대한 듯한 느낌을 받고 묘한 긴장과 민망함을 먼저 느낀다. 칸나나 카라연작을 보면 더 생생하다.
"만약 내 그림에서 성적 상징을 보았다면 그것은 감상자가 자신의 집착을 본 것일 뿐"이라고 대꾸했다지만 그녀가 원하든 원치않든 간에 작은 꽃순을 화면 가득 확대해서 꽃잎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게 그린 그림을 보면 그녀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해지는 게 당연한 것일 것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비로소 드믄드믄 주어지고 여성들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인식이 한창 제고되던 시점에 오키프가 그리던 그림들은, 이전의 미술사에 등장한 그 화려하고 또 무상한 자연적 존재 (바니타스적 인식)로서의 꽃을 당당하고 주체적인 자연존재로서의 알림이었다.
화면 가득 커다랗게 등장한 꽃, 그것도 가장 내밀한 몸 속을 보여주는 것 같은 오키프의 꽃들은 우리가 늘 보면서 본 적은 없는 그 꽃의 말들, 그 꽃의 뜨거운 당당함이었다.
대상적 존재가 주체적 존재로 등장한 것이다.

오키프는 당대 최고의 사진작가이자 전위적인 미술가를 발견하는데 남다른 안목과 영향력을 보였던 스티글리츠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였는데 둘의 나이 37세와 61세.스티글리츠가 24세 연상이었다.
(스티글리츠의 사진도 아마 꿈집 어딘가에 몇 점 올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능력을 존중했고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사진을 통해서 오키프의 모습을 담았다.

그는 꽃그림 연작 외에 동물의 뼈 사진도 자주 그렸는데, 섬세하고 확대된 꽃 그림이 여성을 상징한다면 육탈된 동물의 머리뼈 그림들은 남성성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위대함을 외치나 실제로 잘 모르는 남자들이 싫어서 뼈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고 그녀는 고백한 바 있다.

그녀가 여성성을 어찌 고민하고 주장했던 이 미욱한 이는 이 꽃의 당당함, 그 화려함에 먼저 넋이 나갔다. 태양의 홍염같이 불타는 이 빨강과 검정.
이쁘고 하늘거리는 꽃 그림들에는 썩 관심이 가지 않는다. 관람자들을 편안히 하고 누구에게나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것들은 내 관심의 영역이 아니다.

가질 때를 놓치고 두고 두고 아쉽고 서운한 그림, 그 중에 이 오키프의 양귀비가 크다.






중간중간 학고재에서 나온 이주헌의 <내 마음 속의 그림>의 도움을 받았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알고 싶거나 무작정한 애정만 가진 이들이라면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