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옛그림이나 조각을 보다가, 물리적인 시간의 거리를 곧바로 뛰어넘어 다가온 고대인의 숨결에 경탄할 때가 있다.
이 조각은 기원전 3000년 전의 작품으로 키클라데스제도의 아모로고스섬에서 출토된 것이다.
아래턱쪽으로 가면서 넓어진 타원의 얼굴은 떨어지기 직전으로 충만된 물방울형태인데 눈과 입이 생략되고 긴 삼각형의 코만 남기고 극도로 단순화시킨 조각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리이스의 그 섬세하고 극도로 이상화된 인체의 묘사를 지나, 인간의 숨결이 묻어나는 르네상스, 그리고 고독한 현대인의 그림자를 보여준 자코메티의 그 한없이 슬픈 길다란 선의 사람..을 느닷없이 생략하고 바로 가장 현대적인 얼굴로 등장하는 이 조상.
표정으로 치자면 헨리무어의 그 생략된 얼굴들보다 더 과감하고 단순한데..그런데 이 단순한 얼굴이 놀랍도록 신선하고 감각적이다.
단순히 얼굴형태의 조각에 손길이 둔해서 이목구비를 다 그리지 못했다는 무지의 말은 못하겠지 않은가.
높이 27cm.
긴 얼굴의 이 사람은 생각이 많은 남자였는지, 아니면 따뜻하고 다감한 여자의 얼굴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코 하나를 가진 이 단순한 얼굴은 얼마나 그윽하고 아름다운가.
거리를 거닐다가 불쑥 들어선 화랑에서 만날 듯한 참으로 신선하고 현대적인 얼굴이다.
하긴.. 모든 시대는 그 당시에는 <현대>였겠지.
문득, 우리의 <달항아리>가 생각난다.
아무 장식없이 그윽한 그 품 하나로 한껏 넉넉한 가슴을 보여준 무기교의 아름다움.
가만히 한참을 들여다본다.
역시 불가사의하게 친근한 <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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