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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레이스짜는 여인- 얀 베르메르 반 델프트

by 소금눈물 2011. 11. 3.



햇빛 밝은 창가일까.
부드럽고 환한 햇살이 손끝에 온 신경을 다 빼앗긴 젊은 여인을 감싸고 있다.
입고 있는 웃옷의 밝은 노랑과 합쳐져 같은 톤의 벽지와 밝게 빛나는 이마에 이르러 눈부시다.
빛이 쏟아지는 반대 꼭지점으로부터 관람자의 시선은 여인의 정수리를 거쳐 여인의 눈길이 닿는 손끝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움직인다.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왼쪽위에서 흐르는 시선이 합류하는 어깨의 밝은 레이스컬러.
환한 빛 때문인지, 원래의 색깔때문인지 시선은 거기에 이르러 소실점을 만든다.

베르메르는 주로 풍속화를 그렸다.
비단치마가 사각거리는 귀족들보다는 우유를 따르고 레이스를 짜는 소소하고 조용한 부엌의 일상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이나 농탕질을 하는 부자상인들의 허위의 모습들 같은.
그의 시선은 조용하고 소박하다.
그는 화상일에 시간을 많이 뺏긴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가 더딘 작업의 습관이었는지 남긴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을 한번 보면 그 따뜻하고 소박한 풍경들에 그 아름다움에 눈이 평화로와진다.
그가 그린 그림 속의 여인네들이 다 그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웠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 작품 속의 여인만 보아도 그렇다.
그 시대에 하층민들은 레이스처럼 오랜 수공이 필요로 하는 장식들을 쓰기 어려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레이스는 비쌌고 16-17c 하층민의 삶은 고단했다.
그들은 레이스를 짜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지 그것으로 치장하는 여인들이 못되었다.

베르메르는 그 고단한 여인들의 노동을 안다.
레이스를 짜기 위해 그 손은 거칠어졌을 것이고 만성적인 요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는 그 일상을 치장하거나 사기하지 않는다.
그대로 그녀들의 얼굴과 손끝과 시선을 따라갈 뿐이다.

그는 화면으로 많은 말을 하는 이가 아니다.
그의 그림들은 수다스런 상징이나 치장이 많지 않다.
배경의 무거운 커튼의 질감과 모델들의 소소한 장식, 혹은 연주하고 있는 악기들이 고작이다.
그것들은 그들의 생활이기도 하다.
그는 말 수 적은 시선으로 드러낸다.

베르메르.
문득, 그 책 속의, 그 영화속의 남자와 마주선다.
고집스럽게 다문 입. 약간 흐트러진 몇 올의 머리카락.
그가 그 마음 속에 품고 문을 닫았던 어떤...한...그림자.

물론 이건 사실과 무관한 내 상상이지만.